광원군파보 원본 서문은 도용되었는가?
( 廣州이씨 광원군종회 도유사겸 파보편찬위원장인 광식씨에게 보내는 공개 질의서 )


  나는 광주이씨(廣州李氏) 19대손 광원군파(廣原君派) 이근식(李謹植)이라는 사람이다. 1949년 생이다.
  아버지는 永자輝자이시고 조부님은 太자會자이시다. 조부님은 족보에 "경전(經傳;四書三經)과 사서(史書)를 널리 섭렵하고 예절(禮節)에 정통(精通)하여 향당(鄕黨고을)에서 모범이 되었다.”(博涉經史精通禮節鄕黨矜式焉)라고 소개되어(파보 2-803) 있다. 이를 말하지 않더라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을 것이며 보성의 광주이씨 세계에서는 조부님의 말씀이 곧 법으로 여겨지는 분으로 알려져 있다.

  조부님께서는 1884년에 태어나시어 1971년에 돌아가신 그야말로 우리와 같은 현대를 사시다가 가신 분이다.
  다시 말해서 옛날에 사셨던 분이 아니라는 얘기다. 시쳇말로 아직 호적에 잉크도 마르기 전이라 말할 수 있고 그 자손들도 아직 건재하다.

  누가 서문을 썼던 그 분은 적어도 파보가 발행된 1963년까지는 생존해 계셨을 것이라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았어야 했다.

  조부님은 평생을 고향을 떠나본 적이 없으신 분이나 양진재공 문중 도유사를 수십 년 간이나 하실 정도로 문중 일과 족보를 편찬하는 일에 평생을 바치신 분이다.
  1955년의 양진재공파보와 1963년의 광원군파보를 발간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셨고 두 파보에 서문을 쓰셨다.

  초등학교 입학 전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서당에 나가 당신이 직접 지으신 추구(推句)라는 책을 떼어 책거리로 가져간 말린 호박을 넣어 만든 찰떡 한 시루를 생도들과 맛있게 나누어 먹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버지 역시 한학에 정통하시어 조부님을 도와 평생을 문중 일에 몸을 바치신 분이다. 광원군(諱 克墩)과 감사공(諱 世貞)의 비문을 쓰셨고 여주군 능서면에 있는 충희공(諱 仁孫) 제실 앞에 있는 대법원장을 역임하셨던 容勳 부친이신 泰來씨의 공적비의 비문을 지으셨으며(파보 1-1093), 양진재공 이 후의 직계 후손의 새로운 비문은 거의 다 쓰신 분이기도 하다. (아버지가 쓰신 광원군의 비석은 어디로 갔을까?)

   그리고 보니 조부님과 아버지께서는 충희공에서부터 양진재공까지의 선조님들 4분들과는 인연이 깊으신 듯 하다.

  내가 어렸을 때 족보를 만들기 위해 가정 방문을 통해 수단을 받아오기 위해 때로는 걸어서, 때로는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출타하시곤 하는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당연히 여기셨고 살림을 도맡아 하셨다.

  아래는 참고사항이다.

始祖(生員公)당(생원공) 1代(遁村公)집(둔촌공) 2代之直(淸白吏公)지직(청백리공) 3代仁孫(忠僖公)인손(충희공) 4代克墩(廣原君)극돈(광원군)  5代世貞(監司公)세정(감사공) 6代秀筦(養眞齋公)수관(양진재공)

  알량한 직장에 다닌답시고 조부님이나 아버지의 손을 잡고 그 흔한 시제에 한번 같이 가 드리지 못한 것이 통한으로 남아 늦었지만 그 분들의 뜻을 조금이나마 잇고자 만든 것이 진명파보(鎭明派譜)라 이름지어진 사이트이고, 그 주소는 http://leeks.kr 이다.

  쓰다보니 얘기가 좀 길어져서 죄송스럽긴 하나 내가 이 글을 쓴 이유는 조부님과 아버지의 이야기를 하기 위함이 아니다.

  광주이씨 광원군파라면 모두 알다시피 두 종류의 파보가 있다. 양진재공파보와 그 상위 파보인 광원군 파보가 그것이다.
  그런데 양진재공파보는 1875년, 1955년 1979년 세차례에 걸쳐서 발간된 반면 광원군파보는 1963년 최초 발행되었다가 이번에 반세기 만에 두 번째로 발간된 것이다.

  족보의 서문이란 후손들에게는 조상을 바로 알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廣州이씨가 어떤 성씨 인지를 말해주는 아주 중요한 사적 자료라는 데에 어찌 이의가 있을 수 있겠는가?

  참고로 그 서문들은 아래 메뉴를 클릭하면 볼 수 있다.(보신 후 창을 닫으시면 됩니다.)

1

 1875년 양진재공파보 초본 서문

章자會자분이 서문을 쓰셨다.

2

 1955년 양진재공파보 재발행 중간서

조부님이 서문을 쓰셨다.

3

 1963년 광원군파보 초본 서문

조부님이 서문을 쓰셨다.

4

 1979년 양진재공파보 3판 인용서문

2,3번 서문을 인용함(번역문이 추가됨)

5

 2013년 광원군파보 재발행 인용서문

3번 서문을 인용함(번역문이 추가됨)

* 4번에서 3번 서문도 인용한 것은 상위 파보이기 때문이고, 5번에서 3번 서문만 인용한 것은 2번이 하위 파보이기 때문임.


  여시서 문제가 되는 것은 금년(2013년)에 발행 배포한 광원군파보에 실린 조부님 서문의 작성자 이름이 잘못 표기되어 있다는 것이다.

파보 원본의 서문

재 발행본 서문

  과연 어찌된 일일까?
  내가 광원군파보 얘기를 하면서 양진재공파보를 언급한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이다.
  (참고로 족보에서 太會란 이름을 가진 사람은 4명이나 泰會란 이름은 16명에 달한다.)

  본론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한 가지 집고 넘어갈 필요가 있는 것이 있다.
  파보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이번에 발행된 광원군파보에는 현 도유사인 광식씨의 서문이 실려 있다.
  어떻게 파보에 자신의 서문을 실으면서 원본 서문의 필자에 대해선 간과할 수가 있었는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을 뿐만아니라 더구나 원본 서문을 수정하고 교정을 본 흔적이 분명히 있는데 정작 중요한 필자의 이름을 간과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어찌되었던 고의적인지 아닌지는 이 글을 읽는 독자가 판단해 줄 것으로 믿는 바이다.

  파보는 두 차례에 걸쳐서 배포되었는데 2013년 2월18일에 1차로 배포되었고, 수정이 가해진 후 추가로 인쇄하여 동년 5월11일에 2차로 배포되었다.

  작은아버지인 永자培자(현 강동구청장인 해식(海植)의 부친)께서는 1차로 배포한 파보를 받으신 후 이 사실을 발견하고 광식씨께 알리고 나에게도 알려주셨다. 그러나 나는 파보를 받기 전이어서 확인하기 전에는 뭐라 말씀 드릴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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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배포 후 교정을 볼 때 서문작성자의 이름이 잘 못 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서도 왜 그 부분은 수정하지 않았습니까?

  그 후 내가 2차분을 받고 그 사실을 확인한 후 내 나름대로 여러 가지를 정리하고서 7월 초순 경 광식씨에게 전화를 했다.
  다음은 그 대화 내용이다. 존칭은 생략하겠다.

 나 : 작은아버지로부터 파보 서문에 관한 전화를 받으셨지요?
 광식 : 그렇다네.
 나 : 그럼 어떻게 하실 건가요?
 광식 : 그런데, 그게.......원본이 그렇게 되어있었던 모양이데.
 나 : 원본이라고요? 무슨 원본이요?
 광식 : 대동보도 그렇고.....

라며 말 끝을 흐리고 있었다.

  광식씨는 시방 자기가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줄도 모르고 변명아닌 변명을 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무슨 얘기인지 내가 다시 해석해보고자 한다.

  그 서문의 원본은 대동보이고 그 원본에 작성자의 이름이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 이름이 맞는데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느냐는 얘기다.
  파보 서문의 원본이 대동보라니....아니, 대동보에 파보 서문이 나오다니...어찌 이런 어처구니 없는 말을 할 수가 있는가?

  한번 생각해보자 대동보 얘기는 차치하더라도 그 이름이 맞다고 주장한다면 그렇다고 치자. 그렇다면 남의 글을 도용한 것인가? 그것은 용인할 수 없는 심각한 범죄행위이다.

  족보라는 것은 대대손손 전해지는 귀중한 자료인 동시에 가보로 여겨저 왔다. 자료를 도용해서 만든 족보.... 그런 족보를 대대손손 후손에게 가보라고 물려줄 생각인가?

  따라서 작은 아버지의 전화를 받고서도 확인할 필요도 없었던게 분명했다. 왜냐하면 그 이전에 이미 알고 있었을 테니 말이다.

  나는 광원군종회 사무실에는 1963년에 발행된 광원군파보 원본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보통의 상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파보를 들춰보는 것이 상식일진데 과연 광식씨가 감추고자 하는 일이 무엇이길레 그런 변명을 하고 있는 것일까? (후에 촐판사에 1963년 판 원본 책을 직접 줬다고 말을 바꾼다.)

  여기서 참고로 알아둘 필요가 있는 한가지 사실이 있다.
  당초에 원고를 준비할 때 부도유사인 종원씨가 고대편과 대동보를 맡고 ,  근대편과 파보 쪽은 광식씨가 일을 맡아 했다고 종원씨가 증언해준 바가 있다.
  광식씨가 나와의 전화 통화에서 뜬금없이 말이 안되는 대동보 얘기를 꺼내는 것은 아마도 이와 연관지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나는 생각하는 바이다.

  파보에는 그 상위 파보나 대동보의 서문은 나올 수 있어도 대동보에는 파보의 서문은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대동보를 비롯한 그 어느 파보에도 작성자의 이름이 그리 되어있는 곳은 없다.
  다시 말해서 두가지 가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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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와의 전화 통화에서 그 서문의 원본은 대동보이고 그 원본에 이름이 그렇게 되어있다고 거짓말을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진정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까? 혹시 종원씨에게 책임을 전가하기 위한 언급은 아닌가요?

  그 후론 지금까지 그 이름이 잘 못 된 원인으로 출판사에서 문서 작업을 할 때 글자를 잘 못 입력한 것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름이 잘 못 표기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한 샘이다.
    그것이야 말로 가장 그럴싸하고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운 완벽한 시나리오라고 생각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과연 그럴까?
  그렇다면 출판사에서 그런 실수가 일어날 수가 있는지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다.

  다음을 클릭해 보자.
  문서 편집의 전문가로서 한자 변환시 그 글자가 맨 앞에 나와있어서 자동으로 선택되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그 글자를 틀리게 입력할 확률은 0%임을 알 수가 있다.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출판사의 실수는 사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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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의 실수가 사실이라면 출판사에 책임을 물을 의향은 없으신가요? 그렇지 않다면 죄 없는 출판사 핑계만 댈 것이 아니라 더 늦기 전에 지금이라도 그 진실을 밝히실 의향은 없으신가요?

  2013년 10월21일 나와 작은아버지 두 분 그리고 광주에 사시는 당숙 한분이 광원군회관에 모여 광식씨와 대책을 논의한 바가 있다.

  그 자리에서 당연히 출판사에 건네준 원본이 과연 무엇이었으며 어디에 있느냐에 관심이 쏠렸다.
  광식씨는 서문 작성자의 이름을 바꾸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1963년 판 광원군파보 원본 책자를 직접 주었다고 했다가 내가 광원군파보 원본은 가보같은 귀한 물건인데 왜 책을 직접 줬어야 했는지를 따지자 복사해 줘도 수정하기 어렵긴 마찬가지겠구나 하는데 생각이 미쳤는지 다시 복사해 주었다고 하여 많은 분량의 서류 뭉치를 여러 부분으로 나누어 여러 사람이 한참을 찾도록 하는 등 횡설수설하고 있었다.

  그 서문의 원본이 대동보라면서 왜 광원군파보를 주었을까?
  혹시 출판사에 준 것은 원본 책도 아니고, 책 복사본도 아니며, 편집한 원고를 인쇄하여 준 것이 사실아닐까?  3 장 짜리로 말이다.
  이미 소각처리 된 그 원본을 서류 속 어딘가에 있는 것처럼 한참을 찾도록 한 것은 아닐까?
  편집한 인쇄본을 주었다면 누가 편집했으며 그 인쇄본과 원본 파일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상식적으로 몇 장만 복사해서 주면 될터인데 당초에는 광원군종회사무실에도 없어서 기증 받아 보관하고 있었던 그 귀하고 소중한 광원군파보 원본 책자를 왜 건넸는지 이해할 수가 없지만 그게 사실인지 검토해 볼 필요는 있는 것이다.
 

  ■ 첫 번째 의문점

  다음 그림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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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보 원본 책자를 주었다면 출판사에서 임의로 "계축보"를 "경술보"로 수정한 것일까? 아니면 복사하여 수정한 것인지, 다시 편집한 후 인쇄하여 준 것은 아닌지, 그리고 과연 누가 수정을 했는지 밝혀야 한다.

  그 내용을 문제시 하는 것이 아니라 이는 수정한 것이 분명하므로 그런 내용까지 검토하여 수정하고 교정까지 보았음이 분명할진데 그런 정신으로 작성자의 이름을 간과했다는게 가당치나 한 얘기인가 말이다.

   참고사항 : 한음(1561~1613년)께서는 당신이 돌아가신 해인 癸丑년(1613년, 萬歷41년)에 족보에 서문을 쓰셨다. 그렇다면 그 해에 족보가 나왔음이 틀림었다. 그런데 왜 庚戌보(1610년)라 했을까? 아마도 그 해에 족보 제작에 착수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책이 나오던 해를 기준으로 이름을 붙이는 것이 옳지 않을까? 그 2년 전에 착수 했는지 3년 전에 착수 했는지는 별 의미가 없어보이기 때문이다.(한음 서문 보기)

  ■ 두 번째 의문점

  다음 그림을 보자.
  원본과 인용본은 서문 말미 문장의 글자가 띄어 써진 것이 없다.
  그런데 2013년 판은 아래에 보이는데로 편집이 되어 있는 것이다. 출판사에서 임의로 그렇게 했다고 보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그렇지 않아도 바빠 죽겠는데 왜 스페이스바를 11번씩이나 더 두드려 가면서 편집을 해야 했을까?  그런 시간 낭비를 하면서까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혹시 아래 보이는 것처럼 미리 편집해서 그 인쇄본을 준 것은 아닐까?

  번역문 역시 이름이 한참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1979년 인용문의 번역문에는 작성자 서명 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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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 번째 의문점

  앞에서 제시한 서문들 복사본 중에서 4번과 5번의 번역문을 비교해보자.
  번역을 새로 했는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따로 검토해 보겠으나 애당초 번역문에는 없는 제목과 작성자 이름이 추가되어 있다. 마치 그 이름을 강조하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과연 이 조작은 이름 변경과 함께 번역자와 출판사 중 누가 한 것일까? 출판사에서 했다면 원본에는 있지도 않은 두 줄을 왜 추가 해야만 했을까?

  그 새로 번역했다는 원본을 보기 전에는 어찌 알 수가 있겠는가?


  ■ 네 번째 의문점

  아래 비교표 중에서 서문 원문은 왼쪽의 1963년 원본 그리고 오른쪽의 1979년 인용본과 양쪽 모두와 다른 자를 사용한 중앙이 2013년 판이고, 번역문 쪽은 왼쪽이 1979년 인용본에 있는 것이고 오른쪽이 2013년 판 인용본이다.(이 비교표에서 인위적인 것으로 보이는 癸丑→庚戌의 수정은 제외시킨 것임)

  비교표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이것은 전문가 수준의 실수가 아니다. 다시 말해서 원본을 준 것이 아니라 편집해서 준 것일지도 모른다.
  한자 사용 능력이 수준 이하이거나 아니면 편집 과정에서 이름자 뿐만아니라 이처럼 다른 자도 틀릴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고의적으로 오타를 유발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만약 그렇다면 교활하기까지 한 것인가? 그들에게는 원본의 뜻이 어떻게 훼손되던 무슨 상관이랴.

서문 원문

 

번역문

 

 

 

 

 

 

 

  ■ 다섯 번째 의문점

  출판사에서 원본으로 사용한 것은 광원군파보 초본이 아니라 번역문이 함께 실어진 1979년 발행의 양진재공파보라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을 클릭해 보자. 

 출판사에 준 서문 원본은 무엇이었을까? 

4
출판사에 준 서문 원본은 무엇인지 그 원본을 제시해 주십시오. 출판사에 준 원본은 파보 원본도 아니고 카피본도 아닌 새로 편집한 인쇄본이 아니었던거요?

  만약 파보 원본 책자를 주었다면 아니 원본 복사본을 주었더라도 마찬가지로 그 원본에는 번역문이 없다. 그런데 이번 파보에 실린 서문에는 번역문이 포함되어있다. 그렇다면 그 번역문은 어디서 난 것일까?
  광식씨에게 그것을 묻자 새로 번역을 했다는 궁색한 변명을 하고 있었다.

  그 번역문은 1979년 양진재공파보에 실린 번역문과 99%가 일치한 사실을 확인할 수가 있다.

  그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면 전문가에게 두 번역문이 서로 다른 번역인지 비교분석을 의뢰해 볼 것을 제안하는바이다.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번역문에도 서문 작성자의 이름이 잘 못 되어있다는 사실이다. 이 조작은 번역자와 출판사 중 어느쪽에서 했을까?

  다음을 클릭해 보자.

출판사에 준 서문 번역문은 무엇이었을까?

5
출판사에 건네준 번역문의 출처를 밝히십시오. 그리고 번역을 새로 했다면 그 번역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려주시고 그  번역 원본을 제시해주시기 바랍니다.

  10월21일 회동에서 광식씨는 파보를 최대한 회수해서 문제되는 페이지를 바꾼 다음에 재 배포하겠다는 안을 제시한 바가 있다.

  참으로 그것을 대책이라고 제시하다니 어처구니가 없는 것이 아니라 허무한 생각마저 든다.

  한번 생각해보자.
  광원군파 종원 중에 그 서문에 관심 있어 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과연 그 이름을 바꾸어서 다시 보내줄테니 책자를 보내달라고 하면 보내줄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을까?

  따라서 나는 그 회동에서 1차로 안을 제시하고 답변을 기다렸으나 한달이 다 되어가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어 2013년 11월 19일에 내영증명 우편을 통해 수권을 수정 후 재발행하여 배포하면 이름이 잘 못 표기된 경위에 대해서는 불문에 부치고 인쇄 비용의 일부분을 부담하겠다는 내용의 2차 제안을 하게 된다.
  다음이 그 내용이다.

2차 제안한 내용증명 우편 내용

  결론적으로 광식씨는 단 한마디도 진실을 얘기한 적이 없을 뿐만아니라 단 한 건도 물증(출판사에 준 원본)을 제시한 적이 없다. 모두가 다 거짓말인 것이다.
  광식씨는 말도 안되는 여러 가지 이유로 변명만 할 것이 아니라 이제라도 더 늦기 전에 진실을 밝히고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진정 출판사의 입력 잘못이라면 왜 그런 거짓말을 해야만 할 필요가 있으며 왜 궁금해 하는 원고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가?

  마지못해 광식씨는 다음사이트의 카페에 사과문을 게시했는데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교정에서 오류를 발견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 도유사와 파보편찬위원장을 맏고있는 사람으로써 자기 탓으로 하겠다는 것이 그것이다. 다시 말해서 도의적인 책임은 있는 것으로 하겠다는 뜻이다.
  내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 중의 하나가 "도의적인 책임을 지겠다."라는 말이다. 그 말은 곧 가장 무책임한 말이기 때문이다.

6
설득력이 없는 변명들은 자신을 더욱 초라하게 할 뿐입니다.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도록 압박합니다. 이제라도 모든 사실에 대한 진실을 밝히고 책임을 질 의향은 없으신가요?

  따라서 이제 2차 제안에 대해서는 무효로 하고 공개적으로 3차 제안을 하는 바이니 이제라도 성의있는 답변을 기대해 본다.

  문제의 이름이 수정된 수권(首卷)을 재 인쇄하여 배포하되 책 표지와 속표지에 표시된 책 제목인 "廣州李氏廣原君派譜" 밑에 "(修訂本)"이라는 문귀를 추가하여 기 배포한 책과 혼동이 되지 않도록 해야합니다. 아울러 재 배포할 때에는 잘 못 편집된 경위와 조부님께 사죄하는 내용이 포함된 편지를 첨부해 주시기 바라며, 그 실행 여부를 2주 이내에 통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어쩌면 위 질문들에 대한 답변을 인터넷이 아닌 다른 곳에서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다른 곳에서 하더라도 인터넷에 중계될 것이기 때문이다.

  위안부를 부정하는 일본의 위정자들은 언젠가는 태평양전쟁은 자기들이 일으킨 전쟁이 아니라고 우기게 될지도 모른다. 북한에서 6.25는 북침한 것이라고 하듯이 우리나라에서도 사초를 삭제하거나 수정하는 등의 작금의 작태는 역사를 왜곡하는 천인이 공로할 짓이라는 것을 어찌 모르는가?

  생각해 보건데 어느 누구도 서문을 읽어보는 등 서문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느 누구도 서문의 작성자가 누구인지 관심 있어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서문 자체의 내용이나 그 작성자가 누가 되었던 본인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잡고자 하는 이유는 그것이 역사적인 진실이기 때문이다. 오직 이 이유만이 유일한 이유이다.

  누가 관심을 갖는다고 일을 크게 벌이려 하느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당당히 대답하겠다.
"왜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서문에 누가 관심을 가질지 말지에 대해서 신경을 쓰고 있나요?"

  어느 누가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 할지라도 후손들에게 진실을 전해야 하는 것은 어느시대를 막론하고 어떤 대가를 치루더라도 실행하지 않으면 아니 될 가치있는 일인 것이다. 만에 하나라도 고의적인 조작이 있었다면 응분의 책임을 져야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할 것이다.
  더구나 내가 요구해서가 아니라 그 전에 파보편찬위원장 스스로가 해결했어야 할 일이니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근식 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