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은 아버지께서 번역하신 廣州李氏世蹟(광주이씨세적)의 앞,뒤의 속표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책의 내용에 대하여는 별도로 소개하고싶습니다.

다음의 글은 복내면향토지(福內面鄕土誌)의 인물편 유림·학행(儒林·學行)란에서 아버지를 소개한 글입니다.

【광주(廣州)인. 1917년 봉천리 출생. 자 원실(元實), 호 남창(南窓), 희봉 안규용에게 사사하여 학문이 정통하여 경사를 널리 섭렵하고 향교 향사에 유공하여 사림이 추앙 칭송하다. 자 근식(謹植), 서울 거주】

아래 그림은 제가 결혼 전 아버지께서 처 조부님이 될 분에게 보낸 편지입니다.(처 조부님이 돌아가신 후에 발견하여 가져온 것입니다.)


 謹次德泉號韻

삼가 덕천의 호시에 차운하다
 

 華閥珍原冠海東  화려한 문벌 진원박씨는 우리나라에서 최고인데

 鳳頭淑氣降斯翁  봉산 머리의 맑은 기운이 이 어른에게 내렸구나

 董生行義隱居裏  동생은 은거 중에도 의리를 실행했고

 顔子屢空樂在中  안연은 생활이 어려워도 즐거움이 있었느니

 詩禮不先代業  시와 예를 놓지 아니함은 선대의 업이었고

 衣冠承襲古家風  의관을 이어 오니 고가의 바람이로다

 德泉稱號非偶爾  덕천이란 칭호가 우연이 아니니

 種德源泉萬代同  덕을 심은 근원 샘이 만대에 같이 하리라
 

    南窓 李永輝 남창 이영휘


참고 : 이 詩는 아버지께서 처조부님의 雅號인 '德泉'을 칭송해서 七言 律詩로 쓴 것이고 요약하면,
  1련에 문벌인 진원박씨는 우리나라(海東)의 으뜸이며,봉의 머리의 맑은 기운을 斯翁(처조부를 칭함)이 타고 났으며,   2련은 당나라 召南董生이란 사람이 은거하며 義를 행했고, 孔子의 제자 顔淵이 가난했어도 즐거움으로 살았다는 문헌을 인용하여 처조부를 그런 현인에 비유한 것이고,
  3련은 詩文과 禮節을 선대로부터 이어 받았고 의관 조행은 옛 가풍이며,
  4련은 결론으로서 위의 例로 보아 德泉이란 號는 우연이 아니고, 덕을 심은 근원의 샘이 만대에 같이 할 것이라는 내용임.

번역 晉州 誠齋 許萬秀선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