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의 유래

제례 수상

제사의 종류

제주와 참사자

제사 음식 준비

기제일

명절차례

제사상 차리는 법

신위 지방 쓰는 법

제사지내는 순서

제사 지내는 시간

제례축문 쓰는 법

지방 서식 받기

축문 받기

 

 제사(祭祀))의 유래


 

제사를 지내게 된 동기를 살펴보면 먼 옛날 사람이 원시적인 생활을 할 때 천재 지변이나 또는 사나운 맹수등의 공격과   질병으 로부터 보호를 받기 위한 수단으 로서 하늘과 땅 심수(深水), 거목(巨木), 높은 산. 바다. 조상 등에서 절차를 갖추어서 빌었던 것이니 이것이 즉 제사가 발생한 근원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인간이 자연변화나 어떤 공격체나 또는 질병으 로부터 보호 받기 위한 수단으 로서 행하여져 온 제사는 중세와 근세에 이르러 차츰 유교적인 조상숭배의 제도로 변하여 졌으나. 그대신 유교적인 번잡한 절차와 자연숭배의 미신적인 의식이 높아지므로 가정마다 연간 제사를 지내는 횟수가 무려 48회 이상이나 되었다.

제례(祭禮)는 상례(喪禮)와 마찬가지로 그 의식절차(儀式節次)가 너무 복장하고 까다로워서 옛날부터 유학자(儒學者)나 예문가(禮文家) 사이에서 갑론을박의 논쟁이 많았을 정도였다.

 
우리나라의 제사는
고래부터 신명을 받들어 복을 빌고자 하는 의례로서 자연숭배의 제사 의식이 행하여 졌다.
삼국시대부터 자연신에 대한 제사가 자신의 조상에 대한 제사의례로 발전하였으며 일반 민중보다 왕가에서 먼저 행해졌다.
고려 말에 성리학의 수입과 더불어 "주자가례"에 따라 가묘를 설치하려는 운동이 사대부 사이에서 활발해 졌으나 사실상 가묘가 그다지 보급되지 않았다.
조선시대 초기에는 불교의례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 "주자가례"와 같은 유교의례가 사회전반에 쉽게 보급되지 않았다.
16세기 중엽부터 성리학이 심화 되면서 양반 사대부 사회에서 "주자가례"가 정착하게 되고 주자가례에서 명시된 4대조까지 제사를 지내는 전통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면서 조상에 대한 존경과 추모의 표시로 행하여 지고 있다.

 제례수상(祭禮隨想)
 

상례(喪禮)와 제례(祭禮)에는 말도 많고 형식절차도 가지가지이다.

옛날에는 이 논란으로 조정정사(政事)가 어지러워졌고 학자와 선비들이 점잖지 못하게 파당을 지어 생사(生死)를 걸은 싸움질까지 하였을 정도이다. 그러나 주문공가례(朱文公家禮)는 우리나라 사례(四禮)의 모체라는 점에는 아무도 이의를 달지 못하리라.

가례(家禮)에는 조석상식에 불용주(不用酒)라 하였고 . 퇴계(退溪)선생은 「유(有)주(酒)여든 헌일작(獻一酌)이 가(可)라」하였고 「상식(上食)에 입곡(立哭)이요 무배(無拜)는 효자지어친(孝子之於親)에 매신창야이무배고(每晨唱爺而無拜故)로 불인이신사지고야(不忍以神事之故也)라」하였는데 단(但) 삭망(朔望)에는 보통상식과 달리해서 설전(設奠)을 하므로 헌일작(獻一酌)하고 재배하고 사신(辭神)에 재배한다. 상주가 장전(葬前)에는 헌작(獻酌)을 타인을 시켜 대전(代奠)하는 것은 장전불관세(葬前不 洗携)가 예유명문(禮有明文)이므로 불결한 것을 꺼려함이라 하였다(사계소언(沙溪所言)) 혼백(魂帛)은 비단으로 동심결(同心結)을 맺어서 장례(葬禮)전에 영혼이 의지할 곳을 만드는 것인데 하관후(下棺後)에는 광중(壙中)에 매안(埋安)하는 것이며, 송우암(宋尤庵)은 동심결(同心結)이 상고시대에 음남음부(淫男淫婦)가 정표(情表)하는 매듭이라 해서 천한 것이라 하여 폐지시키고 세포(細布)로 사통오달(四通五達)로 접도록 하였던 것이다. 가주(假主)는 밤나무로 신주(神主)를 만든다. 상고시대에는 시동(尸童)이라고 칠(七), 팔(八)세 된 어린이를 신위로 앉히고 제사를 지냈는데 나무로 만든 신주로 대신했고, 작금에 와서는 밤나무로 조주(造主)를 아니하고 백지(白紙)를 목주(木主)와 같이 접어서 글씨를 써서 신위(神位)로 모시는 것도 가주(假主)라 한다.

우(右)가 동(東)이니 동고(東高) 서비(西卑)라 해서 생전에는 남우녀좌(男右女左)로 설석(設席)이 되고, 사후(死後)에는 서고(西高) 동비(東卑)로 남좌(男左) 여우(女右)가 되니 그 이유는 일월출몰(日月出歿)이 이동위시고(以東爲始故)로 양계(陽界)에는 이동위수(以東爲首)하고 산수지세(山水之勢)는 서하동향고(西下東向故)로 음계(陰界)에는 이서위상(以西爲上)이다.

예문(禮文)에 조손(祖孫)이 부동장(不同杖)이라 하여 승중상(承重喪)에 증조(曾祖)가 생존하시면 무장(無杖)이요. 부상(父喪)에 조부(祖父)께서 생존하시면 유장(有杖)이지만 동도(同途)에서는 집장(執杖)하지 않는다.

제반(祭飯)을 통칭(通稱)「메」라고 하는데 이 말은 인도나라 말이다.

불교(佛敎)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불전(佛前)에 올린 밥을 메라 하였기 때문에 제사(祭祀)에 올리는 밥도 메라고 해서 공통어가 된것이며, 일본(日本)에서 밥을 메시라 하고 쌀을 고메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건너간 말이다. 종부(宗婦)가 만일 친가부모(親家父母)의 상복을 입었으면 제사 날에 임시로 옥색 옷을 입으라고 하였다.

고, 비위(考,妣位)를 각 단설(各 單設)로 해서 한 분만 제사하는 집도 있고 합설(合設)해서 내외를 함께 지내는 집도 있으나 단제(單祭)는 예지정(禮之正)이요, 합제(合祭)는 예지정(禮之情)이라 하였으니 단제(單祭)건 합제(合祭)건 모두 좋으나, 대다수(大多數)가 합제(合祭)하고 있다.

동유설(東儒說)에 「묘소(墓所)에 절사(節祀)는 불가(不可)하다」고 역설(力說)한 분들이 많은데 그 답변에 「안자사어제후(顔子使於諸候)라가 반국전묘이입(返國奠墓而入)이라」하였으며, 춘추전국시(春秋戰國時)에도 묘제(墓祭)가 있었고, 맹자(孟子)에 「동곽파간지제(東郭播間之祭)에 취포이귀(醉飽而歸)」라 하는 말이 있으니 육국시대(六國時代)에도 있었으며, 장양(張良)의 자손이 「어곡성(於穀城)에 병사황석(竝祀黃石)이라」하였으니 서한시(西漢時)에도 있었고 「한무제령제장(漢武帝令諸將)으로 사소우제분묘(賜小宇祭墳墓)라」하니 자고(自古)로 묘제(墓祭)가 있었던 일이다.

율곡(栗谷)은 말하기를 「분향(焚香)과 강신(降神)에 합해서 한번만 재배하고 참신(參神)에 재위자개재배무방(在位者皆再拜無妨)이라」하였다.

예문(禮文)에도 「재불분향(再不焚香)인즉 분향을 청신(請神)이니 강신시(降神時)에 한번만 하고 헌작시 마다 분향은 못쓴다. 」하였다.

예론자(禮論者)들이 「선참신(先參神) 후강신(後降神)」이니 「선강신(先降神) 후참신(後參神)」이니 하는 이론(理論)이 있으나, 행사시(行祀時)에 감실(龕室)에서 출주(出主)할 시(時)에 감실문(龕室門)을 열고 선재배(先再拜)한 후 출주(出主)하는 것을 선참신(先參神)이라 하는 것이지 그렇다 해서 참신(參神)재배가 없는 것은 아니라 하였다.

영정(影幀)에는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으나 가례증해(家禮增解)에 보면 「주자(朱子)도 어장자영정(於長子影幀)에 매치전(每致奠)에 불성설(不盛設)하였다」하는 문구(文句)가 있으니 영정(影幀)에도 치제무방(致祭無妨)하다. 우암(尤庵)은 「평소(平素) 소기지물(所嗜之物)은 불가전폐(不可全廢)니 삼년상내(三年喪內)에는 구육산채(拘肉山采)라도 용지무방(用之無妨)이라」하였다. 「제유부정(祭有不淨)」하니 초상이 났을 때 장전(葬前)이면 제사(祭祀)를 지내지 않고 (폐제(廢祭)). 아기를 낳을 때 (산고(産故))는 삼일(三日) 이내(以內)면 제사를 지내지 않지만 각거(各居)할 때는 상관이 없다.

명재(明齋)는 말하기를 시조제사(始祖祭祀)에는 사성(賜姓)관계로 성(姓)이 달라지기도 하니까 사문((祀文) : (축문(祝文))에 초헌관(初獻官)의 성명을 쓰는 것이 가(可)하다고 하였다. 산신제(山神祭)는 반드시 제사철상(祭祀撤床)과 동시에 지내는 법이나 일강(一崗)에 누대묘소(累代墓所)가 있으면 각묘제사(各墓祭祀)를 마친 뒤에 최고위묘좌편(最高位墓左便)에 설석(設席)하고 지내라고 하였으며 묘사(墓祀)보다 먼저 산신제(山神祭)를 올리는 것은 망발(妄發)이라 하였다. 그러나 묘소거리(墓所距離)가 멀어서 다시 제물(祭物)을 갖추어 돌아가기가 어려운 곳은 원위(元位:(최고(最高)) 제사(祭祀)를 마친 직후에 올리는 것도 무방(無妨)할 것이다.

산신제(山神祭)에 선토재(先土齋)니 하는 논란이 있으므로 예문(禮文)을 이기(移記)하여 둔다.
「주문공가례(朱文公家禮)」에는 「사토지안주자대전집유사시제대부(祀土地按朱子大全集有四時祭大夫) 묘제제후토즉시제(墓祭祭后土則時祭) 제토지(祭土地) 역례지선야(亦禮之宣也) 금의제의어후(今擬祭儀於後)」라 하였고 사례(四禮)의 묘제의(墓祭儀)에는 「묘상매분여시제지(墓上每分如時祭之) 품갱설어육미면(品更設魚肉脚米麵) 식이제후토(食以祭后土)」라고 기록되어 있다.

산신제(山神祭)는 자기 조상의 영세(永世)를 의탁한 산신(山神)에게 감사를 드리는 동시에 또 앞으로의 수호도 부탁하는 의미가 있어서 옛부터 「선토제(先土祭) . 후토제(後土祭)」를 논란하였을 만큼 중요한 제사이다.

그러므로 원위산소(元位山所) 상부좌편(上部左便)에 터를 닦아 두는 것이 통례이며 그 행사(行祀)도 반드시 제주(祭主)가 올리도록 하고 다른 제관(祭官)에게 대행시켜서는 결례(缺禮)이며 또 제수도 몇 가지를 간략하게 진실함은 더욱 잘못이다.

예문(禮文)에도 「매분여시제지품갱설(每分如時祭之品更設)....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송동춘(宋同春)이 김사계(金沙溪)한테 후토제(后土祭)를 묘제(墓祭)전에 지내는 것이 어떠냐고 물으니까 사계(沙溪)는 「나는 우리 선조세천(先祖歲薦)의 묘제(墓祭)에 정성을 다하고 있으니 묘제후(墓祭後)에 후토제(后土祭)를 지내는 것이 옳은 줄 믿으오. 왜냐하면 우리 아버지가 그 곳에 계시니까 그렇소」라고 하였고. 또 손우(遜愚)는 말하기를 「옛부터 오사(五祀)의 예제(禮制)가 모두 그곳 신(神)에게 먼저 지내는데 어찌 후토제(后土祭)만 다를 수가 있으며. 그리고 우리 조선(祖先)을 보호하여 주고 있는 토신(土神)이니까 묘제(墓祭)에 앞서 후토제(后土祭)를 올려야 옳다」고 하였다.

이 두 가지 주장이 서로 상반되지만 후토제(后土祭)는 앞에서 묘제(墓祭)직후에 올리고 묘제(墓祭)때와 같은 제수를 쓰고 또 제주(祭主)가 직접 올리되 분향(분향(焚香)은 「않는다.」 「한다.」의 양설(兩說)이 예서(禮書)에 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제사(祭祀)의 종류(種類) 
 

제례(祭禮)가 까다로운 정도만큼 그 종류도 많다. 그 대강만을 추려 보아도 사당에서 올리는 초하루 보름의 삭망제(朔望祭)를 비롯해서 각종 사당 고유제(告由祭). 정월원일(正月元日)과 추석(秋夕) (八月十五日)의 다례(茶禮) 혹운(或云) 절사(節祀)를 비롯한 중삼(重三)(三月三日). 단오(端午)(五月五日). 유두(流頭)(六月十五日). 중양(重陽)(九月九日). 동지(冬至) 등 세속(世俗) 절사(節祀)가 있고 또 묘제(墓祭)로 한식(寒食)과 시월(十月)에 오대(五代)이상 묘소(墓所)에 올리는 세일사((歲一祀)(시향(時享))인 묘제(墓祭). 그리고 오대(五代)이하의 기일(忌日)에 올리는 기제(忌祭) 등이 있으며.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대제(大祭)는 춘하추동(春夏秋冬) 사시절(四時節)의 가운데 달(중월(仲月))에 올리는 시제(時祭)라 하겠다.

그러나 대제(大祭)라고 하는 시제(時祭)는 오늘날 거의 올리지 않고 있다. 시제(時祭) 다음으로 중요한 제사가 기제(忌祭)인데 사대봉사(四代奉祀)가 원칙이다. 그래서 오대(五代)가 되면 사당에서 천조(遷 月+兆)가 된다. 그러므로 기제의 대상은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고 조부모 및 배우자이다. 다만 무후한 삼촌(三寸) 이내의 존속 동항렬 또는 비속의 친족에 대하여는 기제를 지낼 수 있다.

기제(忌祭))는 고인의 별세한 날에 해마다 한번씩 올리는 제사로서 고인의 추억을 더듬어 별세한 그 날을 길이 잊지 못하여 몸과 마음을 경건하게 하고 금기(禁忌)한다는 뜻에서 올리는 제사이며 그 날을 기일(忌日)) 또는 휘일(諱日)이라고도 한다.

기제의 봉사대상을 별세한 부모. 조부모. 증.고조부모와 배우자로 정한 것은 우리나라의 가족제도에 따른 생활형태로서 이 분들은 생시에 한 가족으로서 생활을 같이 해왔고 가장 친밀한 감정이 남아 있을 것이니, 조부모의 경우는 일찍 돌아가셨다고 해도 아버지의 또는 할아버지의 조부모이기 때문에 가정 생활에서 항상 귀에 익혀 듣게 되고 한 가족으로서의 기억이 생생하여 진심으로 그 분의 별세를 슬퍼하며 그립게 생각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조부모의 윗대(代)로 거슬러 올라가면 조상님들이란 관념과 인식은 갖게 되나 친밀한 가족 관념으로서는 다소 등한시되기 쉽다. 그러나 자손이 없이 별세한 삼촌이나 숙모, 형제자매, 아들 또는 친조카들에 대하여서는 사정이 허용된다면 기제를 지내야 한다.

삼(三)촌 내외분이나 형제자매, 아들 또는 친조카 등 역시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가족관념으로서 정이 두터울 것이며 인정상 별세한 날을 추모하는 뜻에서 간소하게라도 제사를 지내는 것이 인간으로서 친족에 대한 정의(情誼)라 할 수 있으며 이와 같은 의식은 어느 나라에도 다 있다.

우리나라의 제례는 원시적인 형태로 계속하여 오다가 고려말기와 이조를 통하여 중국의 유교사상에 의해서 제대로 형식과 절차를 갖추게 된 것이다. 역사에 나타난 기제제도(忌祭制度)는 고려 공양왕 二년 二월에 포은(圃隱)포은 정몽주(鄭夢周)선생의 발의에 의해서 만들어진 제례 규정에서 비롯되거니와 그에 의하면 대부(大夫) 이상의 벼슬자리에 있는 사람은 삼대(三代). 육품(六品)이상은 이대(二代). 칠품(七品)이하와 일반서인들은 부모(父母)만 제사를 지내라고 하였다.

그 후 이조시대의 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의 예전(禮典)편에 규정한 것을 보면 사대부(士大夫)이상이 四代, 육품(六品)이상이 삼대(三代). 칠품(七品)이하는 이대(二代). 일반서인은 부모만을 지내도록 되어있다.  그 당시는 전제군주제도로서 계급사회를 이루었기 때문에 제사의 봉사대상까지도 계급에 따라 차이를 두었다.

그러나 그 당시 칠품(七品) 이상의 벼슬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수는 불과 二할 미만으로서 부모만을 봉사하는 일반 서민들의 수는 국민 전체의 八할이상을 차지하였으므로 우리나라의  민속화된 기제사(忌祭祀)의 봉사대상(奉祀對象)은 대부분이 부모당대 만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부모당대 만의 기제를 지내오다가 한말(韓末) 갑오경장의 여파로 계급사회가 무너지자 너도나도 사대(四代) 봉사를 하게 된 것이다. 가정의례준칙(家庭儀禮準則)의 삼대봉사(三代奉祀)도 실은 그 근거의 바탕이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의거한 것이고 보면 잘못이 없는 것으로 안다.

우제(虞祭) 

우제는 신주를 위안 시키는 제사이며 초우, 재우, 삼우의 세 가지가 있다.

연시제(年始祭)
정월 초하룻날 아침에 드리는 제사로서 봉사대상은 원래 4대조까지였으나 요즘은 2대조까지만 하기도 한다.
차례 드리는 방법은 봉사 대상이 되는 여러 분을 한꺼번에 모신다.
지방은 합사(合祀)하는 경우 한 종이에 나란히 쓴다.
메는 떡국으로 대신한다.

묘제(墓祭)
시조(始祖)에서부터 모든 조상들의 묘소에 가서 지내는 제사로 한식(寒食)이나 시월에 날짜를 정하여 지내고 있다. 대개 이것을 시제라고 하기도한다.
 고례에 의하면 제주를 비롯한 여러 참사자들이 검은 갓과 흰 옷을 갖추고 일찍 산소에 찾아가 재배하고, 산소를 둘러보면서 세 번 이상 잘 살피며 풀이 있으면 벌초하고 산소 앞을 깨끗이 쓴다.
산소의 왼쪽에 자리를 마련하고 토지신에게 먼저 제사를 지낸 뒤, 산소 앞에 정한 자리를 깔고 제찬을 진설한다.그리고 참신, 강신, 초헌, 아헌, 종헌, 사신의 순으로 제사를 지내고 상을 물린다.
한식은 청명(청명) 다음날로 동짓날로부터 계산해서 105일째 되는 날이다. 이 날은 예로부터 조상께 제사를 지내고 성묘를 가는 것이 관습이었다.
요즈음 성묘는 조상의 산소가 손상된 것을 보살피고 산소 및 주변을 벌초하여 손질 한 후, 상석 또는 상석이 없는 경우 흰 종이를 깔고 간단히 준비한 제수를 차리고, 제주가 분향한고 잔을 올리면 참석자 모두 재배하고 마친다. 이때 잔은 통상 한번만 올린다.   

졸곡(卒哭)
졸곡은 슬프면 곡하던 무시곡(無時哭)을 마치고 조석으로만 곡한다는 예이다.  또 졸곡은 석달만에 강일(剛日)을 골라 지내는 제사이며 한달은 30일을 넘어야만 한 달로 계산한다.

부제(祔祭)
부제는 졸곡 다음날 망인(亡人)의 새신주를 조상의 위(位)에 부칠 때 지내는 제사

대상(大祥)
대상은 초상으로부터 윤달을 결산치 않고 25개월 즉 만 2년에 끝내는 것이며 차례로서는 두 번째 기일에 행사하는 제사 

담제(禫祭)
담제는 대상을 지낸 후 한달을 가운데 두고 지내는 것으로 죽음으로부터 27개월이 되는 달 삼순중 한달을 가리되 정일(丁日)이나 해일(亥日)을 가리어 지내는 제사

소상(小祥)
소상은 초상으로부터 윤달을 계산하지 않고 총 13개월되는 기일 즉 기년 되는 날에 지내는 제사

길제(吉祭)
길제는 담제를 지낸 다음날 삼순(三旬)중 하루를 택하되 정일(丁日)이나 해일(亥日0로 하여 지내는 제사

이제(禰祭)
이제는 아버지의 사당 제사를 말하며 이(示+爾)라는 뜻은 가깝다는 뜻이다.

기제(忌祭)
기일제사를 약칭하여 기제사 또는 기제라 한다.
기제사는 고인이 돌아가신 날에 해마다 한번씩 지내는 제사이며 오늘날 제사라 하면 통상 기제사를 의미한다.
기제의 봉사대상은 과거에는 『주자가례』에 따라 4대조 까지 였으나 요즘에는 가정의례 준칙에 의거 2대조까지와 후손이 없는 3촌이내의 존.비속에 한하여 지내기도 한다.
제사시간은 고인이 돌아가신 날 자정부터 새벽1시 사이 모두가 잠든 조용한 시간에 지낸다. 그러나 요즘은 시간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그 날 해가 진 뒤 어두워지면 적당한 시간에 지내기도 한다.
제사는 제주의 집에서 지내는데 고인의 장자(長子)나 장손(長孫)이 제주로서 제사를 주재한다. 장자나 장손이 없을 때는 차자(次子)나 차손(次孫)이 주관한다.
 

차례(茶禮)
음력으로 매월 초하룻날과 보름날, 그리고 명절이나 조상의 생신날에 간단하게 지내는 제사이다.
요즈음에는 정월 초하루의 연시제(年始祭)와 추석절의 절사(節祀)가 이에 해당된다.
보통 아침이나 낮에 지내며 제수와 절차는 기제사에 따르지만 아침이나 낮에 지내며 축문이 없고, 술잔은 한잔만 올린다. 연시제의 경우 떡국을 메(밥)대신 올린다
음력 8월 보름에 지내는 추석절 제사는 차례를 지내는 봉사 대상은 모든 직계조상으로 하며, 제수는 새로 익은 햇곡식과 햇과일로 한다.

시향(時享)
음력 10월에 5대이상 조상의 묘소에 올리는 묘제(墓祭).

사시제(四時祭)
일년에 4번 춘하추동 4계절의 가운데 달(仲月, 2월, 5월, 8월, 11월) 상순(上旬)의 정일(丁日)이나 해일(亥日)을 가리어 지낸다.
보통 날짜는 전달 하순에 정한다.
제사 전 3일 동안 재계(齋戒)한다.
제사 하루 전날에는 정침을 깨끗이 청소하고 신주 모실 자리를 마련한다. 방 한가운데에 향탁(香卓)을 놓고 그 위에 향로 향합 촛대를 놓는다. 주부는 제기를 갖추어 손질하고 제찬을 정결하게 마련한다.
밤새도록 촛불을 밝혀 두고 다음날(제삿날) 날이 밝으면 아침 일찍 일어나 제주 이하 모든 참사자는 제복을 입고 사당으로 나아가 분향한 뒤 신주를 정침으로 내 모신다.
제사를 지내는 순서는 참신, 강신이 끝나면 초헌, 아헌, 종헌에 이어 유식, 합문, 계문을 한 뒤 수주를 한다. 사신하고 나서 납주(納主)하면 상을 물리고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사례편람』에는 시제야말로 제사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 되어 있지만, 요즘에는 시제를 거의 지내지 않는다

삭망제(朔望祭)
사당에서 매월 초하루, 보름날 올리는 제사.

천(薦)
천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이것을 천신이라 해서 철에 따라 새로 나온 곡식으로 만든 음식이나 과일 등을 사당에 오르는 것을 말한다.

주(祭主)와 참사자(參祀者)

  • 제주(祭主)

제주는 고인의 장자 또는 장손이 되며, 장자 또는 장손이 없는 경우에는 차차 또는 차손이 제주가 되어 제사를 주재한다. 상처한 경우에는 남편이나 그의 자손이 제주가 되고 자손이 없이 상부(喪夫)한 경우에는 아내가 제주가 된다.
제주(祭主))라 함은 제사를 맡아서 지내는, 즉 제사를 주재하는 사람을 말한다.

  • 참사자(參祀者)

기제사는 고인의 별세한 날을 매년 추모하는 의식으로 순수한 가족적인 행사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 행사에는 고인의 직계 자손과 가까운 친척들만이 참여하게 된다.

특히 고인의 직계자손으로서 먼 타지방에 출장을 하였거나 또는 그 밖의 사정으로 제사에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게 되면 제사를 지내는 시간쯤 해서 여행지에서 묵념으로라도 고인을 추모하여야 한다.

종래의 관습으로는 기제사 날이 되면 멀리 출타했던 사람도 반드시 집에 돌아와야 하며, 집에 있는 사람은 말을 타거나 가까운 거리라도 외출하지 않을 뿐더러 집에서 손님도 받지 않고 금기하게 되어있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은 생활여건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사정일 뿐만 아니라 제사를 위해서 공무를 소홀히 하고 가계(家計)에 영향을 미치도록 한다는 것은 고인의 영혼도 그렇게 반가워하지 않을 것이다.
 

제사음식.제수진설

⊙제수(祭羞) : 제수(祭需))

제수(祭羞))라 함은 제사에 차리는 음식물을 말한다.
제사는 고인을 추모하기 위한 정성의 표시라고 할 수 있다.
정성의 표시는 물질로써 가름되는 것이 아니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이라야 한다.

그러므로 첫째 제수는 많은 돈을 들여서 성찬을 차리기보다는 평상시 망인(亡人)이 즐겨하는 음식 또는 가정에서 먹는 반상음식으로 깨끗하게 차려 정성을 다하면 그것으로 족하다.

번거로운 의식 절차로 행하는 것만이 의례로 여겼던 옛날의 성현 말씀에도 「맘을 다한 것이 제사의 근본이라 할 수 있고 물질로만 다한 것은 가장 잘못된 제사이다」고 하였다.

예문(禮文)에 「진기심자(盡其心者) 제지본(祭之本), 진기물자(盡其物者) 제지말(祭之末)」이라. 마음을 다하는 것이 제사의 근본이지 물질로만 때우려 드는 것은 잘못된 제사라고 하였다.

  • 포(脯)는 주로 문어나 건어를 쓰고,
  • 과실에는 밤, 대추, 배, 감, 은행 등을 쓰되 홀수여야 한다.
  • 그리고 소채(燒菜)로는 두가지의 익힌 나물과 한 가지의 김치를 쓴다.
  • 어물로는 주로 조기를 쓰며 육물(肉物)엔 집짐승의 고기를 쓰느게 좋다.
  • 적(炙)으로는 육(肉)과 간(肝)을 이용하는데, 진찬(進饌)이라고 하여 간을 초헌 때 올리고 육은 아헌과 종헌 때에 올린다.
  • 떡과 간장을 준비하고,
  • 국은 육물, 생선, 채소 등으로 한다.
  • 옛날엔 탕(湯)을 어(魚), 육(肉), 소(蔬) 등으로 3탕을 올렸으나 요즘은 단탕(單湯)으로 위의 재료를 혼합하여 쓴다.
  • 설 차례는 메 대신 떡국을, 추석 차례는 메 대신 송편을 올립니다.
  • 제사에 쓰지 않는 음식은 복숭아, 꽁치, 삼치, 칼치, 고추, 마늘 등이며 식혜, 탕, 면 등은 건데기만 사용합니다.
  • 밥(반飯) 
    제삿밥으로 신위의 수대로 주발 식기에 수북이 담고 뚜껑을 덮는다. 예전에는 밥 외에도 국수를 올렸으나 오늘날에는 생략해도 무방하겠다.  
  • 국(갱羹) 
    제사 국이다. 신위의 수대로 대접 또는 주발을 담고 뚜껑을 덮는다. 재료는 쇠고기와 무를 네모로 납작하게 썰어서 함께 끓인다. 고춧가루, 마늘, 파 등을 쓰지 않는다.  
  • 떡(편) 
    제사에 쓰는 떡은 현란한 색깔을 피하므로 팥고물을 쓸 때는 껍질을 벗겨 내어 가급적이면 흰 빛깔이 되게 한다. 보통은 백설기나 시루떡을 해서 사각의 접시에 보기쫗게 놓고, 신위의 수에 관계없이 한 그릇만 올리기도 한다.

  • 찌게(탕(湯) 
    탕은 오늘날의 찌개라고 할 수 있다. 쇠고기, 생선, 닭고기 중 한가지만을 택하여 조리한다. 양념에 파, 마늘, 고추등을 쓰지 않는다. 예전에는 탕의 수를 1,3,5의 홀수로 하였고 탕의 재료로서 고기,생선,닭 등을 사용하였다. 3탕일 경우는 육탕, 어탕, 계탕을 준비하였는데 모두 건더기만 탕기에 담았다. 그러나 지역에 따라 국물과 같이 올리는 경우도 있으므로 편리한 대로한다.  
  • 튀김 및 부침(전煎) 
    기름에 튀기거나 부친 것으로 육전(肉煎)과 어전(魚煎) 두 종류를 준비한다. 옛날에는 적과 함께 계산하여 그릇 수를 홀수로 만들기 위해 전은 반드시 짝수로 만들었다. 전과 적을 합하여 홀수가 괴어야 하는 것은 재료가 고기,생선등 천산(天産)이기 때문에 양수인 홀수에 맞춘 것이다. 육전은 쇠고기를 잘게 썰거나 다져서 둥글게 만들어 계란을 묻혀 기름에 부친다.어전은 생선을 저며 계란에 무치고 기름에 부친다.  
  • 구이(적炙) 
    적은 구이로서 제수 중 특별식에 속한다. 옛날에는 육적(肉炙), 어적(魚炙), 계적(鷄炙)의 3적을 세 번의 술잔을 올릴 때 바꾸어 구워서 올렸으나 오늘날에는 한가지만 준비하도록 하고 올리는 것도 처음 진찬 때 함께하고 잔을 올릴 때마다 따로 하자 않는다.
    육적(肉炙)은 쇠고기를 2~3등분하여 길게 썰어 소금구이하듯이 익혀 사각 접시에 담는다.
    어적(魚炙)은 생선 2~3마리를 고춧가루를 쓰지 않고 익혀서 사각의 접시에 담는다.
    이때 머리는 동쪽으로 하고 배는 신위 쪽으로 가게 담는다.(지방에 따라 반대대로 하기도 한다)
    계적(鷄炙)은 닭의 머리, 다리, 내장을 제거하고 구운 것으로 등이 위로 가게 하여 사각의 접시에 담는다. 
    적을 올릴 때는 적염(炙鹽)이라 하여 찍어 먹을 소금을 접시나 종지에 담아 한 그릇만 준비한다.  
  • 나물(숙채熟菜) 
    익은 채소이다. 한 접시에 고사리, 도라지나 무, 배추나물 등 3색 나물을 곁들여 담는다. 또는 각기 한 접시씩 담기도 한다. 추석 때는 배추, 박, 오이, 호박도 푸른색 나물로 쓰는데 역시 마늘,고추가루는 양념으로 쓰지 않는다.  
  • 김치(침채沈菜) 
    희게 담은 나박김치를 보시기에 담아서 쓴다. 고춧가루를 쓰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 간장(청장淸醬) 
    맑은 간장을 한 종기에 담는다.  
  • 과일류 
    전통적으로 제사에 쓰는 과일은 대추 밤 감, 배였으므로 이것들을 꼭 준비하고 그밖에 계절에 따라 사과, 수박, 참외, 석류, 귤 등의 과일을 1~2종 준비하면 충분하다. 바나나, 파인애플, 키위 등 생소한 수입 과일은 일체 사용하지 않도록 한다. 옛날에는 과일이 지산(地産)이라 하여 그릇 수를 음수인 짝수로 하였다.
  • 포(脯) 
    고기를 말린 육포, 생선의 껍질을 벗겨서 말린 것, 문어나 마른 오징어 중에서 한두 종류를 사각의 접시에 한 그릇만 담는다. 옛날에는 문어다리나 오징어를 가위나 칼로 왕관, 산호, 공작깃의 형태로 오려서 장식하기도 했으나 오늘날에는 생략하기도 한다.

기제일(忌祭日)

기일((忌日)은 휘일(휘(諱日)이라고도 하며 고인이 별세한 날을 말한다.

  • 별세(別世)전날이 입재일(入齋日),
  • 별세(別世)한 날이 기일(忌日),
  • 다음 날이 파재일(罷齋日)이다.
  • 대제((大祭)(시제(時祭))는 삼일재계(三日齋戒)를 하고,
  • 묘.묘제(廟祭.墓祭)에는 이일(二日),
  • 기제(忌祭)에는 일일재계(一日齋戒)이다.
  • 입재일(入齋日)에는 제주(祭主)와 주부(主婦)가 목욕재계(沐浴齋戒)하고 음주를 삼가며, 가무(歌舞)를 금하고 상가의 문상도 안가는 법이며, 집안을 깨끗이 청소하고 고인의 생존시를 회상하면서 추모하는 법이다.

 

명절차례

차례명칭 : 고례에는 차례란 말이 없고, 민속 명절이면 명절 음식을 올린다고 했다. 그것을 차례라 말하게 된 유래는 확실한 기록은 안보이나 중국의 고례에 조상을 가장 간략하게 받드는 보름에 차 한잔만 올리는 것을 차례라 말하게 되었고, 따라서 우리가 조상을 가장 간략하게 받드는 것이 명절의 예이기 때문에 “차례”라 하게 된 것으로 믿어진다.
                     명절에 지내는 것은 제사가 아니고 차례라 한다.

차례대상 : 자기가 기제를 받드는 모든조상에게 차례를 지낸다.

봉사자손 : 장자손이 주인이되고 주인의 아내가 주부가 된다.

차례일시 : 고례에는 모든 명절에 차례를 지냈으나, 한때는 4대 명절인 설날, 한식, 단오, 한가위에만 지내더니 요사이에는 설날, 한식, 한가위(추석)에만 지낸다. 지내는 시간은 가묘에서 지낼때는 아침 해뜨는 시간이고 묘지에서 지낼때는 그날중에 지낸다.

차례장소 : 가묘(사당)를 모실때는 가묘에서 지내고, 성묘할때는 주과포만 묘지앞에 차리고 성묘했다. 그러나 현대에는 그러면 중복행사라해서 설날은 집에서만 지내고, 한식과 추석에는 반드시 성묘를 해야하기 때문에 묘지에서 지내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형편에 따라 집에서 차례를 지낼때도 차례를 지낸 후에 성묘를 한다.

성묘하기

조상의 묘지를 살피는 일을 성묘라 하는데 성묘의 때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나 일반적으로 설날·한식·추석·섣달그믐에 성묘한다.

(가) 설날성묘 : 살아계신 조상에게 세배를 올리면서 돌아가신 조상이 묻힌 묘지에 세배를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대개 정월 중에 성묘한다.

(나) 한식성묘 : 언 땅이 풀리고 초목의 생장이 시작되는 때이다. 겨울 사이에는 눈 사태나 나지 않았을까, 땅이 녹으면서 무너지지는 않았을까 염려되어 반드시 성묘를 해야한다.

   또 초목이 생장하는 때이므로 묘지를 수축하고 옮기고 돌을 세우고 나무나 떼를 심는데는 최상의 시기이므로 묘지를 손보는 사초를 한다.

(다) 한가위(추석)성묘 : 장마철이 지나고 초목의 생장이 멈추는 계절이다. 장마에 사태로 무너지지않았을까, 웃자란 잡초나 나뭇가지가 뒤덥지나 않았을까 염려되어 성묘를 한다. 또 웃자란 풀을 깎고 나뭇가지를 치는 일을 벌초라한다,(벌초는 한가위 전에 하기도 한다.)

(라) 섣달 그믐날의 성묘 : 묵은해를 보내면서 조상에게 한 해의 가호(加護)하심에 대한 보은과 묵은 세베를 드리는 것이다.

기제와 차례의 차이점

지내는 날 : 기제는 조상이 돌아가신날 지내고 차례는 명절에 지낸다.

지내는 시간 : 기제는 밤에 지내고 차례는 낮에 지낸다.

지내는 대상 : 기제는 돌아신 조상과 그 배우자만 지내고, 차례는 자기가 받드는 모든 조상을 지낸다.

지내는 장소 : 기제는 장자손의 집에서 지내고, 차례는 사당이나 묘지에서 지낸다.

차리는 제수 : 기제에는 메(밥)와 갱(국)을 차리지만 차례에는 명절 음식을 올리는 예이므로 밥과 국(메와 갱)을 차리지 않고 명절 음식(설날-떡국, 한식-화전·쑥떡, 한가위-송편)을 올린다. 기제에는 해(醢:생선젓·조기)를 올리지만 차례에는 그 자리에 혜(醯·식혜 건더기)를 차린다.

지내는 절차 :

· 기제에는 술을 3번 올리지만 차례는 1번만 올린다.

· 기제에는 잔반을 내려 술을 따라서 잔반을 올리지만 차례는 주전자를 들고 제상위의 잔반에 직접 술을 따른다.

· 기제에는 적을 술을 올릴 때 마다 바꾸어 올리지만, 차례에는 3가지 적을 제상을 차릴 때에 함께 올린다.

· 기제에는 술잔을 내려 모사(茅沙)나 땅 바닥에 조금씩 3번 지우는(좨주:祭酒)와 첨작을 하지만 차례에는 좨주 첨작을 않는다. 할 수도 없다.

· 기제에는 합문 · 계문을 하지만 차례에는 않는다.

· 기제에는 숙수(숭늉)를 올리지만 차례에는 올리지 않는다.

· 기제에는 반드시 축문을 읽는데 차례에는 읽지 않는 사람도 많다.
 • 기제에는 숫가락을 밥그릇에 꽂지만 한가위 차례에는 밥이 없기 때문에 숟가락은 없고 젓가락만 가지런히 골라서 시접위에 올려 놓는다.

명절 차례상 차림

제주가 차례상(신위를 모시는 쪽)을 바라보아 앞쪽이 북, 오른 쪽을 동, 왼쪽을 서로 한다.  지역이나 집안의 전통에 따라 다를 수는 있으나 보통 차례상은 5줄로 진설하는데, 제주 앞쪽에서부터 과일, 반찬, 탕, 적과 전, 술잔과(앞에서 보아 왼쪽에) 명절음식을 놓는다.

(1) 5번줄 : 과일을 놓는 줄로 “조율이시”라 하여 동쪽부터 대추, 밤, 배(사과), 감(곶감)의 순서로 차리거나, “홍동백서”라 하여붉은색 과일은 동쪽, 흰색 과일은 서쪽에 차리며(대추는 동쪽에, 밤은 서쪽에), 그 이외의 과일은 순서가 없으나, 나무과일, 넝쿨 과일 순으로 놓는다. 과일 줄의 끝이나 가운데에 과자류를 놓는다. 고례에는 어떤 예서에도 과실별 위치가 명시 되지 않았는데 이유는 계절과 지방에 다라 과실이 다르기 때문이다. 현대는 그렇지 않으므로 정해도 무방할 것이다.

(2) 4번줄 : 반찬을 놓는 줄로 “좌포우혜”라 하여 왼쪽 끝에는 포(북어, 대구, 오징어포)를 쓰며, 오른쪽 끝에는 식혜류(수정과)를 놓는다. 그 중간에 삼색 나물을 놓는데 푸른색은 시금치·쑥갓, 갈색은 고사리·고비나물, 흰색은 무·숙주·도라지 나물 등이 적당하며, 간장과 침채(동치미) 등은 그 다음에 올린다.

(3) 3번줄 : 탕을 놓는 줄로 보통 육탕(육류), 소탕(두부와 채소류), 어탕(어패류)의 순으로 올리며 요즘에는 한 가지 탕으로 하는 가정이 늘어나고 있다.

(4) 2번줄 : 적과 전을 놓는 줄로 육적(고기류 적), 어적(생선류의 적), 소적(두부, 채소류 적)의 순서로 올린다. “어동육서”의 원칙에 따라 생선은 오른쪽, 고기는 왼쪽에 놓는다. 생선은 머리가 오른쪽으로 배가 신위쪽으로 향하게 놓는다. 적은 생선이나 고기를 대꼬챙이에 꿰어 양념하여 구은 음식이며, 전은 밀가루를 묻혀서 지진 음식(부침개)를 말한다.

(5) 1번줄 : 술잔과 명절음식을 놓는 줄로 앞에서 볼 때 명절 음식은 오른쪽에 술잔은 왼쪽에 올린다. 시접(수저를 놓는 빈 대접)은 단위제(한분을 모신)인 경우에는 앞에서 볼때 왼쪽에 위치에 놓으며, 양위 합제(두분을 모신)의 경우에는 중간 부분에 놓는다.축문,향로, 향합은 차례상 앞에 따로 마련한 향상위에 놓으며, 그 밑에 모사그릇 퇴주그릇, 제주(술) 등을 놓는다.

※ 설날•한가위 차례 지내는 순서

① 묘지의 앞, 집에서는 깨끗한 곳에 제의 기구를 올려 놓는다.(병풍, 의자, 제상, 향상, 술상, 촛대, 모사, 자리)

② 자손들이 정한 위치에 평상시의 공수를 하고 선다.

제주수축(題主修祝) : 지방은 모든 조상을 내외분씩 따로 쓰고, 축문은 한 장으로 쓰는데 봉사자는 제일 웃조상과의 관계를 쓰고, 차례 대상은 웃조상부터 차례로 쓴다.

설위진기(設位陳器) : 4대 봉사의 경우 신위쪽을 보아 왼쪽부터 고조고·비, 증조고·비, 조고·비, 고·비 순으로 배설한다.

⑤ 식어도 상관 없는 음식을 제상위에 차린다. (과실, 포, 식혜, 나물, 김치, 간장, 시접, 술잔, 식초)

⑥ 신위(지방)를 의자위에 모신다.(묘지에서는 필요 없다.)

강신분향(降神焚香) : 신주라면 먼저 참신을하고 다음에 강신을 한다.고 했으나, 참신을 먼저 했으면 그 다음에 강신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참신을 먼저하고도 강신을 하는 고례의 제도로 보아 먼저하는 참신은 신주를 뵙는 것이지 조상을 뵙는 것이 아니라고 여겨진다. 당연히 강신을 먼저해야 한다.

   분향는 향긋한 향을 태워 하늘에 계실지도 모르는 조상의 신령이 향기를 타고 오시라는 상징적인 행사이다.

· 주인이 향안 앞에 북향해 읍을하고, 꿇어 앉는다.

· 왼손으로 향로 뚜껑을 열고 향합 남쪽에 놓는다.

· 오른손으로 향을 집어 향로에 넣어 태우기를 3번하고, 왼손으로 향로 뚜껑을 덮고 오른손으로 향합 뚜껑을 덮는다.

· 주인은 일어나서 한발 뒤로 물러나 읍하고 두 번 절한다.

강신노주(降神酹酒) : 기제와 같으나 웃대 조상부터 차례로 모신다.

    뇌주는 향그러운 술을 땅바닥에 부어 적셔서 지하에 계실지도 모를 조상의 혼백을 모시는 절차이다.

  • 동집사는 주가 앞으로 가서 술병의 뚜껑을 열고 행주로 술병 주둥이를 깨끗이 닦은 다음 주전자에 술을 붓는다. (술을 따르기 편한 술병이면 주전자가 필요 없다.)

  • 동집사는 주전자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주인의 오른쪽 앞에서 서쪽을 향해 선다.

  • 서집사는 소탁 앞으로 가서 강신잔반을 두 손으로 받쳐들고 주인의 왼쪽 앞에서 동쪽을 향해 선다.

  • 주인은 읍하고, 주인과 두 집사가 함께 꿇어 앉는다.

  • 서집사는 강신 잔반을 주인에게 주고 주인은 두 손으로 강신 잔반을 받아서 받쳐 든다.

  • 동집사는 주인이 든 강신잔반에 술을 따른다.

  • 주인은 왼손으로 잔대를 잡고 오른손으로 잔을 집어 모사에 서쪽에서 동족으로 3번에 나누어 술을 모두 지운다.

  • 주인은 잔을 잔대 위에 올려 놓고, 잔반을 서집사에게 주고, 서집사는 두손으로 받는다.

  • 주인과 두 집사가 함께 일어 난다.

  • 동집사는 강신잔반과 주전자를 원자리에 놓고 제자리로 물러난다.

  • 주인은 한 발 물러나서 읍하고, 두 번 절하고 제자리로 물러난다.

참신(參神) : 주인•주부 이하 모든 참례자가 조상에게 뵙는 절차이다.   여러 조상을 모시더라도 남자는 재배, 여자 4배를 한 번만 하면 모든 조상에게 하는 것이 된다.

⑪ 뜨겁게 먹어야 하는 음식을 차린다.  모든 제수를 올린다.

진찬(進饌) : 적을 적의 자리에 서쪽부터 육적, 계적, 어적·적소금의 순서로 동시에 차리고, 기제에서 메와 갱을 올리는 자리에 서쪽에 고위 떡국, 동쪽에 비위 떡국을 올리는 것이 다르다.

헌주(獻酒) : 주인이 향안 앞에 나가 읍하고 주전자를 들고 웃대 고위와 비위의 잔반부터 아랫대까지 제상 위의 잔반에 차례대로 모두 술을 가득 따르고 재배한다.

삽시정저(揷匙正箸) : 주부가 향안 앞에 나가 몸을 굽혀 예를하고 웃대 조상부터 차례대로 계반개를하고 고위 떡국에 숟가락을 꽂아 담그고 시접위에 젓가락을 걸치고 이어서 비위도 그렇게 한 다음 향안 앞에서 4배한다.

⑮ 축문을 읽으려면 이 때 읽는다.

시립(侍立) : 주인 이하 모든 참례자가 7~8분간 공수하고 공손히 서 있는다.

낙시저(落匙著) : 주부가 삽시 정저의 순서로 낙시저하고 집사는 모든 뚜껑을 덥는다..

  • 주부는 제상의 서쪽으로 가서 고위에서 숟가락을 뽑아 시접에 담고 고위 젓가락을 내려 시접에 담는다.

  • 이어서 제상의 동쪽으로 옮겨 비위의 시저도 그렇게 한다.

  • 이대 시저로 시접바닥을 굴르거나 밥을 떠서 숙수(숭늉)에 말거나 젓가락을 다른 제수위에 올려 놓는 일은 하지 않는다.

사신(辭神) : 주인 이하 남자는 재배, 주부 이하 여자는 4배한다.

납주(納主) : 신주는 봉주할 때와 반대로 가묘에 모신다.

분축(焚祝) : 독축자는 지방과 축문을 태워 재를 향로에 담는다.

(21) 철찬 (撤饌) : 제상 위의 제수를 내린다.

(22) 음복 (飮福) : 참례한 자손들이 제수를 나누어 먹으며 조상의 음덕을 기린다.

(23) 철기구(撤器具) : 모든 제의 기구를 원자리로 치운다.

 

  • 합설과 각설

    > 문] 차례 등 제사에서 4대조까지 합설 제향하려면 축문식과 봉사손 문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 답] 윗 조상부터 차례로 내외분씩 열기하여 부모가 끝이 되게 쓰고, 봉사손은‘孝玄孫(효현손)○○敢昭告于(감소고우)로 쓰면 됩니다.

    > 윗글 내용을 보면서 의아한게
    >
    1 차례에서는 합설 가능하나 축문이 없으며
    > 2 제사시 축문은 있으나 각기 기일날 모시는바 합설이 없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


    ※ 귀하께서 의아하게 생각하신 점에 대해 소견을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1. 요사이 명절의 차례에는 축문을 읽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원래는 축문을 읽어야 하는 것이다.
                  다만 현대에는 축문을 읽지 않는 사람이 많을 따름일 뿐이다.


    차례축문 한글서식을 예로들면,

    "이제 단군기원 2004년 설날에 큰아들 ㅇㅇ향교 ㅇㅇ갑돌은 아버님 ㅇㅇ ㅇㅇ어른과
    어머님 부인 ㅇㅇ ㅇ씨 어른 산소에 감히 밝혀 아뢰 나이다. 계절이 바뀌어 이미 햇수를 고쳤으니 산소를 우러러 뵈오며 슬픈마음 하늘과 같아 끝간데를 모르겠나이다. 삼가 맑은 술과 갖은 음식을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공경을 다해 받들어 올리니 어여삐 여기사 흠향하옵소서"
    기일 제사의 축문을 참고해 사실대로 격에 맞게쓰되, 위의 예시는 설날에 묘지에서 지내는 경우 이므로 집에서 지낼 때에는
    "설날"을 "한식" 또는 "한가위" 등으로 고치면 될 것이고
    "어른 산소"에를 집에서 위패를 모시고 지낼 때는 "앞에"라고 쓸 것이며,
    "이미 햇수를 고쳤으니"는 설날의 경우 이므로 한식에는 "이미 비와 이슬이 내렸으니"로 단오에는"만물이 자라 울창하니" 한가위에는 "이미 찬이슬이 내렸으니"라 쓰면 될 것이다.
    "산소를 우러러 뵈오며"묘지의 경우 이므로 집에서는"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새롭게"로
    "슬픈마음 --끝간데를 모르겠나이다"는 부모의 경우 이므로 조부모 이상에게는 "기리는 마음 이기지 못하겠나이다."로 아내에게는" 슬픈마음 이기지 못하나이다." 아랫사람에게는"가슴 아픔을 이기지 못한다.로
    "공경...받들어 올리니"는 웃어른 에게만 쓰고 아내와 아랫 사람에게는 "마음을 다해 상을 차렸으니"라고 쓰며
    "흠향 하옵소서"는 웃어른께만 쓰고, 아내에게는 "흠향하소서" 아랫사람에게는"흠향하라" "어여삐 여기사"를 배우자나 아랫 사람에게는 "두루"라 쓰면 될것이다.


    2. 합설과 각설에 대하여
    국조오례의 진설도는 考(남자조상), 비(여자조상)위를 한 상에 차리는 것이 현대의 진설법과 같으나, 신분에 따라 다르고, 율곡 제의초, 사계의 가례집람, 도암의 사례편람 등 진설각설을 정리해 보면 현대 감각에 맞는 통일된 진설법이 요구 된다. 그러려면 먼저 문제점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합설과 각설 : 고례에는 고비각설(考비各設)이었으나, 현대는 모두 고비합설(合設)을 한다. 그러려면 무엇을 따로 차리고 어떤것을 함께 담을 것인가를 정한다.
    ●각설(各設) : 산 사람도 따로 담아서 먹는 메(밥).갱(국).술.국수. 떡.숭늉은 따로 담아야 할 것이다.
    ● 합설(合設) : 반찬과 과실은 한 접시에 담고, 수저도 시저거중(匙箸居中)의 원칙을 지켜 한 접시에 신위수 대로 시저를 담아 신위 앞의 중앙에 놓는다.



제사상 차리는 법

진설(陳設)

제수진설에도 말이 많다.
여북 해서 「남의 제사에 곶감 놓아라 대추 놓아라 참견 말라」는 말이 나왔으며. 「깎아 놓아라 굴러간다」는 풍자까지 생겼을 정도이다.
대한한사전(大漢韓辭典)에 조(棗)(대추조)를 찾아보면 「조동율서(棗東栗西)」라고 되어있으나
예문(禮文)에는 없는 말이다.
또 홍동백서(紅東白西)라 하나 이것도 찾아 볼 수 없다.

예문(禮文)에는 조서률차(棗西栗次)라 했을 뿐이다.
퇴계(退溪)는 「어동육서(魚東肉西)로 생동숙서(生東熟西)와 적유삼종(炙有三種)(어축치(魚縮雉))이며.
어육(魚肉)은 천산(天産)이라 양(陽)이니 기수(奇數)요.
과곡(果穀)은 지산(地産)이라 음(陰)이니 우수(偶數)라
약가빈난변(若家貧難辨) 칙의음양수(則依陰陽數)하여 멸품(滅品)도 미유불가(未有不可)」라 하였다.
치적(雉炙)은 계적(鷄炙)으로 대용한다.
또 사계(沙溪)는 「상례비요(喪禮備要)의 진설도(陳設圖)는 판본(板本)의 오야(誤也)」라 하였고 .
퇴계(退溪)는 묘사(墓祀)에는 진찬례(進饌禮)가 없으나 반갱(飯羹) 불용(不用)도 무방하다고 하였지만,
구봉(龜峰)은 원야례(原野禮)에도 반갱(飯羹)이 있으니 반갱(飯羹)을 아니 써서는 안되며,
종헌(終獻)때 계반개(啓飯蓋)하고 삽시(揷匙) 후에 부복하라고 하였다.

진설 요령은 집사자(執事者)의 좌(左)가 서(西)요 우(右)가 동(東)이다.
따라서 젯상의 앞이 남(南)이 되고 뒤가 북(北)이 된다.
남(南)에는 제상 앞 중앙에 향탁을 놓고, 그 동(東)편에 주준상(酒樽床), 서(西)편에 축(祝)탁을 놓는다.
향탁 위에는 후면 중앙에 모사를 놓고 그 뒷줄에 합동로서(盒東爐西)로 향합과 향로를 놓고.
주준상 위에는 강신잔반(降神盞盤), 퇴주그릇 주전자 술병을 놓고,
향탁 앞에 배석(拜席))이며
북면(北面) 중앙에 신위(神位)인데 고서비동(考西妣東)이다.

제상남단이 제오행(第五行)으로 실과인데, 생과(生果)가 서(西)편, 조과(造果)는 동(東)이며.
사행(四行)이 채(菜)(나물).
삼행(三行)이 탕(湯).
이행(二行)이 적(炙).
일행(一行)이 반갱(飯羹)이다.

사행(四行)양끝에 「좌포(左脯) 우혜(右醯),
이행(二行)양끝에는 「좌면(左麵) 우병(右餠),
일행(一行)에는 좌단(左端)으로부터 「시접(匙접) 반(飯) 잔(盞) 갱(羹) 초(醋)」가 되고,

합설시(合設時)에는 「반(飯) 잔(盞) 갱(羹) 시접(匙접) 반(飯) 잔(盞) 갱(羹)」이 된다.
혜(醯)는 젓갈.
적(炙)은 어적(魚炙) 육적(肉炙) 치적(雉炙)이 있는데 치적(雉炙)은 계적(鷄炙)으 로 대용한다.

그리고 탕(湯)은 어탕(魚湯), 육탕(肉湯), 채탕(菜湯))이 있는데 제수는 살림 형편과 그 때 그때 사정에 따를 것이지 수량에 구애될 필요는 없다. 제수의 가지 수 보다는 고인을 기리는 정성이 담겨 있어야 한다.

제사상 진설(陳設)법은 각 지방의 관습에 따라 다른 점이 많이 있으나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향교에서 권하는 제사상 차리는 법을 많이 따르고 있습니다. 진설하는 위치를 말할 때는 편의상 제사 지내는 신위를 향하여 우편을 동쪽, 좌편을 서쪽으로 정합니다. 북쪽에 병풍을 치고 병풍 앞에 신위를 모실 위패(位牌)와 촛대를 마련한 다음 식어도 괜찮은 음식부터 제물을 차리고 진설이 다되면 사진 혹은 미리 써둔 지방을 위패에 붙입니다. 제사상 앞 가운데 위치한 향상에는 축문, 향로, 향합을 올려 놓으며 그 밑에 모사(茅沙)그릇, 퇴주그릇, 제주(술)등을 놓습니다.

진설하는 방법에서 기본이 되는 몇 가지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반서갱동(飯西羹東)
  밥은 서쪽(왼쪽) 국은 동쪽(오른쪽)에 위치 한다.즉 산 사람의 상 차림과 반대이다. 수저는 중앙에 놓는다.

적전중앙(炙奠中央)
적은 중앙에 위치한다. 적은 옛날에는 술을 올릴 때마다 즉석에서  구워 올리던 제수의 중심 음식이었으나 지금은 다른 제수와 마찬가지로 미리 구워 제상의 한가운데 놓는다. 

좌포우혜(左脯右醯)
4열 좌측 끝에는 포(북어, 문어, 전복)를 놓고 우측 끝에는 젓갈을 놓는다.

어동육서(魚東肉西)
생선은 동쪽에 놓고 육류는 서쪽에 놓는다.

두동미서(頭東尾西)
생선의 머리는 동쪽을 향하게 하고 꼬리는 서쪽을 향하게 놓는다.

홍동백서(紅東白西)
과일 중에 붉은 색 과일은 동쪽에 놓고 흰색 과일은 서쪽에 놓는다.

조율시이(棗栗枾梨)
조율시이라하여 좌측부터 대추, 밤, 감(곶감),배(사과)의 순서로 놓는다.

좌면우병(左麵右餠)
2열 좌측에 국수를 우측에 떡을 놓는다.

생동숙서(生東熟西)
4열 동쪽에 김치를 서쪽에 나물을 놓는다.

건좌습우(乾左濕右)
마른 것은 왼쪽에 젖은 것은 오른 쪽에 놓는다. 

진설하는 열은 모두 5열로 하며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합니다.

제1열은 술잔과 메(밥), 떡국(설), 송편(추석)을 놓는 줄
앞에서 보아 떡국(송편)은 우측에 술잔은 좌측에 차린다. 시접(수저와 대접)은 단위제의 경우에 앞에서 보아 왼쪽에 올리며, 양위합제의 경우에는 중간 부분에 올린다.

제2열은 적(炙)과 전(煎)을 놓는 줄
대개는 3적으로 육적(육류 적), 어적(어패류 적), 소적(두부 채소류 적)의 순서로 올린다.
적 : 생선이나 고기를 대꼬챙이에 꿰어서 양념하여 구운 음식.
전 : 재료에 밀가루를 뭍혀서 후라이 팬에 부친 음식(부침개). 

제3열은 탕을 놓는 줄
대개는 3탕으로 육탕(육류탕), 소탕(두부,채소류탕), 어탕(어패류탕)의 순으로 올리며, 5탕으로 할 때는 봉탕(닭,오리탕), 잡탕등을 더 올린다. 한가지 탕으로 하는 경우도 많이있다.

제4열은 포와 나물을 놓는 줄
좌측 끝에는 포(북어, 대구, 오징어포)를 쓰며 우측 끝에는 식혜나 수정과를 쓴다. 그 중간에 나물반찬은 콩나물, 숙주나물, 무나물 순으로 올리고 삼색나물이라하여 고사리, 도라지, 시금치나물등을 쓰기도 하며 김치와 청장(간장), 침채(동치미, 설명절)는 그다음에 올린다.

제5열은 과실을 놓는 줄
좌측부터 대추, 밤, 감(곶감), 배(사과)의 순서로 차리며 그 이외의 과일들은 정해진 순서가 따로 없으나 나무과일, 넝쿨과일 순으로 차린다. 과일 줄의 끝에는 과자(유과)류를 놓는다.

 

[ 한분을 모실 때의 제사상 차림도 ] 


 

[ 고인의 내외분을 함께 모실 때의 제사상 차림도 ]

신위(神位)와 지방(紙榜) 쓰는 법

  • 신위(神位)

신위(神位)라 함은 고인의 영혼 즉 신을 모시는 곳을 말하는데 종래에는 지방으로 모셨으나 지금은 많은 가정에서 영정(사진 또는 초상화)을 모시고 지내고 있다.
기제사의 본 뜻이 고인의 별세한 날을 추모하는 의식이라고 하였으니 그 추모하는 정을 제대로 고취시키려면 고인의 생전 모습이 그대로 나타난 사진을 모시는 것이 예법(禮法)에 없다고 하여 탓할 것은 아니다.
그러니 별세하신지 오래되어 사진이 없을 경우에는 지방을 쓰겠지만 생전에 사진 한 장씩은 꼭 찍어 두었다가 별세한 뒤에 상례의 영좌나 제사의 신위로 모시도록 하였으면 한다.
옛날에는 중국에서 들어온 철저한 유교 의식에 따라서 위호(衛護)라고 하여 사대부가(士大夫家)에서는 집집마다 사당(祠堂)을 짓고 역대 조상들의 신주를 모시고 수많은 제사를 지내야 하였으나 지금은 세상살이가 많이 달라졌으니 세속을 따르는 것도 좋겠다.
종이에 쓴 지방보다는 사진이 훨씬 더 실감나고 그리움도 솟지 않겠는가.

  • 지방(紙榜)

제사 지낼 때에는 지방을 쓰는데. 제사대상자를 상징하는 것으로 신주대신으로 사용하였으며 제사 직전에 만들었다가 제사를 마치면 소각한다.그 내용은 제사를 모시는 사람과 조상과의 친속관계, 조상의 관직(여성은 봉호), 시호(여성은 성씨)등을 나타낸다. 지방이라는 것은 고인의 신위표시를 말하는 것으로서 사당에 신주를 모시는 분은 지방이 필요 없지만 그렇지 않은 분은 흰 종이 위에 작고하신 분의 호칭과 관직을 먹으로 정성껏 써서 교의 또는 제상(祭床) 정후면(正後面) 병풍에 붙인다. 지방길이는 주척(周尺)으로 일척이촌(一尺二寸) 폭이 삼촌(三寸)인바 주척일척(周尺一尺)은  현재 미터법으로 약 이십(二十)센치에 해당하니까 길이가 이십이(二十二)센치에 넓이가 육(六)센치 정도이다, 직사각형으로 절단하여 위쪽을 둥글게 오려서 사용하기도 한다.
위를 둥글게 하고 아래쪽을 평평하게 하는 까닭은 천원지방(天圓地方:둥근 하늘과 평평한 땅)을 상징한 것이다.
한 장의 지방에 남,여 조상 두 분의 신위를 쓸 때는 중앙을 기준으로 왼쪽은 남자조상을 쓰고, 오른쪽은 여자조상을 쓰며 세로쓰기를 한다.
만약 여자조상이 두 분 이상이면 남자조상의 바로 오른쪽에서부터 계속 쓴다.
 
지방(紙榜)쓰는 방식은 아래와 같다.

지방의 내용과 작성법

남자조상(한문

지방의 구성은 모시는 조상 + 조상의 관직 + 조상의 이름 + 조상의 자리 순으로 구성.
의미는 어떤이름의 어떤 벼슬을 지낸 몇 대 조상의 자리란 뜻.

한자

顯       考

學      生

府     君

神   位

현       고

학      생

부     군

신   위

구성

①모시는 조상

②조상의 지위

③조상의 이름

④조상의자리

의미

존경의 의미

돌아가신 아버지를 의미

학생 관직이 없는 경우로 과거시험 준비 중인 예비관원을 의미
관직 관직이 있는 경우 그 관직을 쓴다.

府君 제사대상이 자신의 윗사람인 경우

이름 제사대상이 자신의 아랫사람인 경우

 ~神位 ~
조상의 자리

작성법

아버지 顯考
할아버지 顯祖考
증조할아버지 顯曾祖考
고조할아버지 顯高祖考

벼슬이 없는 경우 學生
동래부사인 경우
 ~東萊府使~

국회의원인 경우
 ~
國會議員~

 

 

 

여자조상(한문)

지방의 구성은 모시는 조상 + 남편의 벼슬에 따른 봉작 + 성씨 + 조상의 자리 순으로 구성.
의미는 어떤 성씨의 어떤 여성지위의 몇 대 조상의 자리란 뜻.

한자

顯     

孺      人

密  陽  朴  氏

神   位

현      비

유      인

밀  양  박  씨

신   위

구성

①모시는 조상

②조상의 지위

③조상의 성씨

④조상의자리

의미

顯 존경의 의미


돌아가신 어머니를
    의미한다. 

孺人 일정한 봉작이 없는 경우

봉작 봉작이 있으면 봉작을 쓴다.

부인이 두 분 이상인 경우 구분하기 위함.

 ~神位 ~조상의
        자리

작성법

어머니
할머니 顯祖
증조할머니顯曾祖
고조할머니顯高祖

봉작이 없으면 孺人
정경부인인 경우
          
~ 貞敬夫人 ~
국회의원인 경우
         ~
國會議員 ~

본관 + 성씨

 

 

한자 지방 (벼슬이 없는 경우)

高祖父母

曾祖父母

祖父母

父母





















 






 孺
 人


 金
 海

 金
 氏
 

























 



















 





















 



















 





















 



















 





















 



















 


(亡)


















 

 

 

 

 

 

伯父母

叔父母

子息

 






















 




















 






















 




















 

故(亡)

















 

 顯





















(亡)






(學)
(生)








(之)
(靈)

 

 

한자 지방 (벼슬을 지낸 경우)

高祖父母

曾祖父母

曾祖父母

祖父母

祖父母

父母





















 



















 





















 



















 










成均









 



















 





















 



















 





















 



















 





















 



















 





















故(亡)
















 

한글 지방
 
요즘은 한글로 지방이나 축문을 쓰는 가정도 적지 않다. 한글로 쓸 경우에는
한자 문구를 그냥 한글로 표기 하기도 하고 그 뜻을 풀이하여 쓰기도 한다.

부모

 

부모

 

부모

 

남편

 

부인












 












 

 












 











 




















 











 

 











 

  • 사후(死後)에는 서고동고(西高東皐)라 좌편(左便)에 고위(考位)(남(男) 우편(右便)에 비위(비位)(여(女))를 쓴다.
  • 「고(考)」는 「부(父)」와 같은 뜻으로 생시(生時)에는 「부(父)」라 하고 사후(死後)에는 「고(考)」라 하며, 사당(祠堂)에 모실 때에는 「이(示+爾)」라고 하며「비」는 모(母)와 같다.
    생시(生時)에는 「모(母)」. 사후(死後)에는 「비()」라한다.
  • 고인(故人)에 관작(官爵)이 있으면 「학생(學生)」 대신(代身)에 관작(官爵)을 쓰고 부인(夫人)의 호칭(呼稱)도 달라진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민주사회에서는 맞지 않는다.
    따라서 이 문제는 각자의 재량에 맡길 수밖에 없다.
  • 처제(妻祭)에는 자식(子息)이 있어도 부(夫)가 제주(祭主)가 된다.

 

제사 지내는 순서  

제사의 진행순서와 예법은 가문과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으므로 이 내용을 참고 하여 가문과   지역에서 행하여 지는 순서와 예법에 맞게 제사를 진행하면 될 것입니다

1.영신(迎神)

먼저 대문을 열어 놓는다. 제상의 뒤쪽(북쪽)에 병풍을 치고 제상 위에 제수를 진설한다. 지방을 써 붙이고 제사의 준비를 마친다. 예전에는, 출주(出主)라 하여 사당에서 신주(神主)를 모셔 내오는 의식이 있었다.

2.분향강신(焚香降神)

영혼의 강림을 청하는 의식이다. 제주(祭主)가 신위 앞으로 나아가 꿇어 앉아 향로에 향을 피운다. 집사(執事)가 제상에서 잔을 들어 제주에게 건네주고 잔에 술을 조금 따른다. 제주는 두 손으로 잔을 들고 향불 위에서 세 번 돌린 다음, 모사 그릇에 조금씩 세 번 붓는다. 빈 잔을 집사에게 다시 건너 주고 일어나서 두 번 절한다. 집사는 빈 잔을 제자리에 놓는다. 향을 피우는 것은 하늘에 계신 신에게 알리기 위함이고, 모사에 술을 따르는 것은 땅아래 계신 신에게 알리기 위함이다.

3.참신(參神)

고인의 신위에 인사하는 절차로서 참사자(參祀者) 모두 신위를 향하여 두 번 절한다. 신주를 모시고 올리는 제사일 때는 참신을 먼저 하고 지방을 모셨을 경우에는 강신을 먼저 한다. 미리 제찬을 진설하지 않고 참신 뒤에 진찬(進饌)이라 하여 제찬을 올리기도 한다. 진찬때는 주인이 육(肉,고기) 어(魚,생선) 갱(羹,국)을 올리고 주부가 면(麵,국수) 편(餠,떡) 메(飯,밥)를 올린다.

4.초헌(初獻)

제주가 첫번째 술잔을 올리는 의식이다. 제주가 신위 앞으로 나아가 꿇어 앉아 분향한다. 집사가 술잔을 내려 제주에게 주고 술을 가득 붓는다. 제주는 오른손으로 잔을 들어 향불 위에 세 번 돌리고 모사 그릇에 조금씩 세 번 부은 다음 두 손으로 받들어 집사에게 준다. 집사는 잔을 받아서 메 그릇과 갱 그릇 사이의 앞쪽에 놓고 제물 위에 젓가락을 놓는다. 제주는 두 번 절한다. 잔은 합설(合設,고인의 내외분을 함께 모시는 것)인 경우 고위(考位,남자) 앞에 먼저 올리고 비위(여자) 앞에 올린다. 집안에 따라서는 술을 올린 뒤 메 그릇의 뚜껑을 연다.

5.독축(讀祝)

축문 읽는 것을 독축이라 한다. 초헌이 끝나고 참사자가 모두 꿇어 앉으면 축관은 제주 좌측에 앉아 천천히 정중하게 읽는다. 축문은 제주가 읽어도 무관하다. 독축이 끝나면 참사자 모두 일어나서 재배하는데 초헌의 끝이다. 과거에는 독축 뒤에 곡을 했다.

6.아헌(亞獻)

두번째 잔을 올리는 의식이다. 주부가 올리는 것이 관례이나 주부가 올리기 어려운 경우에는 제주의 다음가는 근친자인 남자가 초헌 때와 같은 순서에 따라 올리기도 한다. 이때 모사에는 술을 따르지 않는다. 주부는 네 번 절한다.

7.종헌(終獻)

세번째 술잔을 올리는 의식이다. 아헌자 다음가는 근친자가 올리는 게 원칙이나 참가자 중 고인과의 정분을 고려하여 잔을 올리게 하기도 한다. 아헌 때와 같은 방법으로 한다. 잔은 7부쯤 부어서 올린다.

8.첨작(添酌)

종헌이 끝나고 조금 있다가 제주가 신위 앞으로 나아가 꿇어 앉으면 집사는 술주전자를 들어 신위 앞의 술잔에 세 번 첨작하여 술잔을 가득 채운다. 집안에 따라서는 집사로부터 새로운 술잔에 술을 조금 따르게 한 다음 집사는 다시 이것을 받아, 신위 앞의 술잔에 세 번으로 나누어 첨작 하는 경우도 있다.

9.삽시정저(揷匙正箸)

좌측부터 조부, 조모 순으로 메 그릇의 뚜껑을 열고 숟가락을 밥 위의 중앙에 꽂는 의식이다. 이때 수저 바닥(안쪽)이 동쪽으로 가게 한다. 젓가락은 시접 위에 손잡이가 왼쪽을 보게 놓는다. 제주는 두 번, 주부는 네 번 절한다.

10.합문(闔門)

영위(靈位)께서 식사하는 시간을 갖게 하는 의식이다. 참사자가 모두 잠시 밖으로 나가고 문을 닫고 몇 분 동안 조용히 기다린다. 대청마루에 제상을 차렸으면 뜰 아래로 내려가 읍(揖,상견례때 하는 절)한 자세로 잠시 기다린다. 단칸방의 경우 제자리에 업드려서 몇 분 동안 있다가 일어선다.

11.계문(啓門)

계문이란 문을 여는 것을 말한다. 축관(祝官)이 세 번 헛기침을 한 후 방문을 열며 들어 가면 참사자가 모두 뒤따라 들어간다.

12.헌다(獻茶)

헌다란 차를 올린다는 뜻이다. 갱(국그릇)을 내리고 숭늉을 올려 숟가락으로 메를 세 번 떠서 숭늉에 말고 수저를 숭늉 그릇에 놓는다. 이때 참사자 모두 읍한 자세로 잠시 동안 꿇어 앉아 있다가 제주의 기침소리를 따라 고개를 든다.

13.철시복반(撤匙復飯)

숭늉그릇에 놓인 수저를 거두고 메 그릇의 뚜껑을 덮는 것을 말한다.

14.사신(辭神)

고인의 영혼을 전송하는 절차로서 참사자가 신위 앞에 두 번 절한뒤 지방과 축문을 향로 위에서 불사른다. 지방은 축관이 모셔 내온다. 신주는 사당으로 모신다. 이로써 제사를 올리는 의식 절차는 모두 끝난다.

15.철상(撤床)

제상위의 모든 제수를 집사가 물리는데 뒤에서부터 차례대로 한다.

16.음복(飮福)

참사자가 한자리에 앉아 제수를 나누어 먹는데 이를 음복이라 한다. 음복을 끝내기 전에는 제복을 벗거나 담배를 피워서는 안된다.

제사 순서

의미

내    용


조상모심
강신/ 降神

  
조상을 모심

    (제주)   향을 피운다
  
 (집사)   제주에게 술을 따라준다.
  
 (제주)   술을 모사그릇에 조금씩 세 번 붓는다.
  
 (제주)   두 번 절한다.

 문안인사
참신/ 參神


조상에 대한 인사

    (전원)   제사 참가자 모두 합동으로 두 번 절한다.


첫잔드림
초헌/ 初獻
 

    (제주)   향을 피운다.
  
 (집사)   남자조상 잔을 제주에게 주고 술을 가득 부어준다.
  
 (제주)   모사그릇에 조금씩 세 번 붓는다.
  
 (제주)   7부 정도 남은 술을 집사에게 준다.
  
 (집사)   술잔을 밥과 국 사이에 놓고 젖가락을 음식 위에 놓는다. 
  
 (제주)   두 번 절한다.

 
축문읽기
독축 / 讀祝
 

    (전원)   모두 꿇어 앉는다.
  
 (제주)   축문을 읽는다.
  
 (전원)   두 번 절한다.

 둘째잔드림
아헌 / 亞獻

    첫잔드림의 절차와 동일 (단, 모사그릇에 술 따르는 절차 생략한다.)

 끝잔드림
종헌 / 終獻

    첫잔드림의 절차와 동일 (단, 모사그릇에 술 따르는 절차 생략.  술은 7부로 따른다.)

 
식사권유
유식 / 侑食

   

  
조상의 음식 드심

    (제주)   술주전자를 들고 남자조상의 잔과 여자조상의 잔에 술을 가득 따른다.
  
 (제주부인)   메(밥) 뚜껑을 열고 숟가락을 메 한가운데 꽂는다.
  
 (제주부인)   젖가락은 손잡이가 서쪽으로 향하게 놓는다.
  
 (제주/제주부인)   같이 두 번 절한다.

    예전에는 식사권유 후 조상께서 편히 식사를 하시라는 의미로 문 밖에 나가
     잠시 기다린 다음 숭늉을 올렸다.  요즘은 집 구조상 참사자들이 잠시 무릎을
     꿇고 대기한 후 숭늉을 올리기도 한다.

 숭늉올림
헌다 / 獻茶

    (제주)   국을 물리고 숭늉을 올린다.
  
 (제주)   밥을 숭늉에 세 숫가락 말아 놓고 젖가락을 고른다.

 작별인사
사신 / 辭神

  
조상을 보내드림

    (전원)   제사 참사사 모두 합동으로 두 번 절한다.

 지방소각
납주 / 納主

    (제주)   향 앞에서 지방과 축문을 소각하여 재는 향로에 담는다.

 제상정리
철상 / 撤床

    안쪽에 있는 음식부터 차례로 음식을 내린다.  

제사 지내는 시간(忌祭時間)

예문(禮文)에는 별세한 날 자시(子時)에 제사를 지낸다고 되어 있다.

궐명제(厥明祭)니 질명제(質明祭)니 한다. 궐(厥)은 기야(其也)요 . 질(質)은 성야(成也)니 궐명(厥明)하면 미명(未明)이요. 질명(質明)하면 먼동이 틀 무렵이다.
그러니까 자정(子正)(零時)부터 인시(寅時)(五時)까지 날이 새기 전 새벽에 기제(忌祭)를 올리는 것이 예(禮)이다.
신도(神道)는 음(陰)이라 하여 늦 밤중에 활동을 하며 닭소리가 나기 전에 돌아가야 한다는 말은 예문(禮文)에는 없는 미신적인 헛소리다.
날이 바뀌는 첫 새벽(자시(子時))에 기제(忌祭)를 올려야 한다는 궐명행사(蹶明行祀)의 예문정신(禮文精神)은 돌아가신 날이 되면 제일 먼저 고인의 제사부터 올리는 정성을 강조한데 있다고 본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은 사회구조와 생활여건에서 볼 때 한밤중 제사는 핵가족화 되어서 분산 거주하는 가족들의 참석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다음 날 출근과 활동에도 지장이 많게 된다.
그래서 가정의례준칙(家庭儀禮準則)을 보면 별세한 날 일몰 후 적당한 시간에 지내게 되어 있다.
저녁때라면 사업하는 분이나 회사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집에 돌아오는 시간이며 제관들이 모이기 좋은 시각이어서 도시에서는 저녁 여덟시(八時), 아홉시(九時) 사이에 행사(行祀)하는 집안이 대부분이며 또 결례도 아니라고 본다.


종래에는 가정에 따라서 생활의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제청이라 하여 제사를 지내는 장소를 따로 마련해 두어서 항상 그 장소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었으나 그것은 허식에 불과하며 지나친 것이다.

  

 례축문(祭禮祝文) 쓰는 법

축문(祝文)에 대(對)한 해설(解說)

 축문의 종류는 여러 종류가 되는데 일일이 그격식을 따지자면 요즘같은 시대에 맞지 않을것이다.
시대가  변하고 생각하는 사고가 달라 졌는데 굳이 옛방식을 따를 필요가 없이 폐지되어야 할것은
폐지되고 현실에 맞는 그런 격을 따라야 할것이다.

상례(상례(喪禮)와 제례(祭禮)에 따르는 여러 가지의 축문(祝文)과 고사(告辭)를 씀에 있어서 흔히 나오는 주요 문구(文句)를 다음에 설명해 둔다.

  1.  (태세) : 제사 지내는 해의 간지(干支)
  2.  (삭일) : 제사 든 달의 초하룻날 일진(日辰
  3.  (일진) : 제사 날의 간지(간지(干支)
     이상은 육십갑자(六十甲子)에 따른 것인데 책력을 보면 알 수 있다.
  4.  (모관) : 남자의 경우 관직이 있는 사람은 그 관명(官名)을 쓰고 없으면 학생(學生)이라 쓴다.
  5.  (모공) : 남자의 경우 타인이 말할 때에는 본관(本貫)과 (성(姓)공(公)이라 쓰고, 자손(子孫)이 직접 제사를 지낼 때에는 부군(府君)이라 쓰며 연소자에게는 이를 쓰지 않는다.
  6.  (모봉) : 부인의 경우 옛날에는 남편이 관직에 오르면 그의 처도 따라서 품계(品階)를 얻어 호칭했으나 그것이 없으면 유인(孺人)이라 쓴다.
  7.  (모씨) : 부인의 경우로서 남편에 따른 외명부(外命婦) 호칭을 쓰고 그 밑에 본관성씨를 쓴다.
  8.  제주촌칭(祭主寸稱)
    제사 지내는 자손의 촌칭(寸稱)인데 초상을 당하면 졸곡(卒哭))전에는 부상(父喪)에는 고자(孤子), 모상(母喪)에는애자(哀子). 부모(父母)가 모두 안 계실 때는 고애자(孤哀子))라 쓰며, 조부상에는 고손(孤孫) 조모상에는 애손(哀孫), 조부모가 모두 안 계실 때는 고애손(孤哀孫)이라 쓰고, 담제이후에는 효증손(孝曾孫). 고조부모제사에는 효현손(孝玄孫). 남편의 제사에는 모씨(某氏). 아내의 제사에는 부(夫)라 쓴다.
  9.  제위(祭位)
    제사를 받으실 당자인데 제주와의 촌수에 따라 각각 달리 쓴다. 부친은 현고(顯考), 모친은 현비(顯비), 조부는 현조고(顯祖考), 조모는 현조비(顯祖비), 증조부는 현증조고(顯曾祖考), 증조모는(顯曾祖비). 고조부는 현고조고(顯高祖考). 고조모는 현고조비(顯高祖), 남편은 현벽(顯), 처는 망실(亡室). 또는 고실(故室)이라 쓴다. 현자(顯字)는 고인을 높이는 뜻이다.
  10. 고사자성명(告祀者姓名)
    산소에서 토지신(土地神)에게 고사를 지낼 때 직접 제주가 아니고 타인이 지낼 때에는 그 사람의 성명을 쓰고 직접 제주가 지낼 때에는 제주의 이름만 쓴다.
  11. 봉사자명(奉祀者名)
    제사를 지내는 사람의 이름을 쓰되 제(弟)이하에는 쓰지 않는다.
  12. 감소고우(敢昭告于) (감조곡우 혹은 감소 고우)
    처(妻)의 제(祭)에는 감자(敢字)를 삭제(削除)하고 소고우(昭告于)라 하며 제(弟) 이하(以下)에게는 고우(告于)만 쓴다.
    여기에서 밝혀둘 것이 있으니 「감소고우(敢昭告于)」라는 말은 「감히 밝혀 아뢰옵니다」하는 말인데, 「감조곡우」라고 도 읽고 「감소고우」라고 도 읽는다.
    그런데 자원(字源)을 보면「소(昭)」를 「소」라 하면 「평야(評也), 소대(昭代), 저야(著也)」 등의 경우이며 「광야(光也), 명야(明也), 효야(曉也))일 경우에는 「 조」라 한다.
    그리고 「고(告)」는 「고상일곡(告上日告)」(곡)이요. 「발하일고(發下日誥)」 ( 고)라는
    말이 「광운(廣韻)」에 기록(記錄)되어 있다. 따라서 「감소 고우」 로 흔히 읽지만 「감조곡우」가 정확(正確)한 독축(讀祝)이다.
  13. 애모불녕(哀慕不寧)
    처(妻)에게는 비도산고(悲悼酸苦) 불자승감(不自勝堪). 형(兄)에게는 비통무사(悲痛無巳) 지정여하(至情如何), 제(弟)에게는 비통외지(悲痛(阜+畏)至) 정하가처(情何可處). 자(子)에게는 비념상속(悲念相續) 심언여회(心焉如(火+毁))라 쓴다.
  14. 주과용신건고(酒果用伸虔告)
    제(弟) 이하(以下)에는 주과(酒果) 용고(用告) 궐유(厥由)라 쓴다.
  15. 호천망극(昊天罔極)
    은혜가 하늘과 같이 크고 넓어서 헤아릴 수 없다는 뜻
    부모(父母)에게는 호천망극(昊天罔極). 조부모(祖父母) 이상(以上)에게는 불승영모(不勝永慕). 남편(男便)에게는 불승감창(不勝感愴). 제이하(弟以下)에게는 불자승감(不自勝感)이라 쓴다.
  16. 근이(謹以)
    처와 제(弟)이하에는 자이(玆以)라 쓴다.
  17. 복유(伏惟) : 처(妻)와 제(弟) 이하(以下)에게는 쓰지 않는다.
  18. 존령(尊靈) : 처(妻)와 제(弟) 이하(以下)에게는 유령(惟靈)이라 쓴다.
  19. 애천(哀薦).지천(祇薦) :애천 . 지천
    처(妻)와 제(弟)이하는 진차(陳此). 백숙부모(伯叔父母)에게는 천차(薦此)라 쓴다.
  20. 향(饗) : 높이 받드는 문자(文字)이니 줄을 바꾸어 현자(顯字)와 함께 높이 쓴다.
  21. 현자(顯字)도 한 자  높이 쓴다.


    기타(其他) 참고사항(參考事項)

    정월(正月) 설날이나 팔월(八月) 추석(秋夕)과 같은 절사(節祀)에는 축(祝)이 없다고 하나 축문이 있어도 가하고 단작(單酌)으로 초헌(初獻)만 하며 그 밖의 절차는 기제(忌祭))와 같다. 또 묘제(墓祭))의 진설이나 절차는 기제사에 준하지만 먼저 참신(參神)하고 후에 강신(降神)한다.

축문서식(祝文書式)

각종(各種) 축문(祝文) 서식(書式)을 다음에 소개(紹介)한다.

출주고사(出主告辭)
(사당(祠堂)에서 신주(神主)를 모셔 나을 때 읽는 축(祝).

금이(今以)
현고 모관부군 원휘지신 감정신주 출취정침 (청사)
顯考 某官府君 遠諱之辰 敢請神主 出就正寢 (廳事)
(풀이) 오늘이 돌아가신 날이옵니다. 신주(神主)께서 정침(正寢)으로 나아가기를 감히 바라옵니다.


饗향



謹근
以이
淸청
酌작
庶서
羞수
恭공
伸신
奠전
獻헌
尙상


顯현
高고
祖조
考고
또는
顯현
高고
祖조

諱휘
日일
復부
臨임
追추
遠원
感감
時시
不불
勝승
永영
慕모


顯현
高고
祖조

孺유
人인
密밀
陽양
朴박
氏씨
歲세
序서
遷천
易역


顯현
高고
祖조
考고
某학
官생
府부
君군



敢감
昭소
告고
于우

歲세
次차
太태
歲세
某모
月월
月월
建건
朔삭
初초
某모
日일
日일
辰진
孝효
玄 현
孫손
哲철
壽수
 



維유






고조부모


〔뜻풀이〕


 OO년 O월 O일 효손 OO은 삼가 고하옵이다.
 고조할아버님
 고조할머님 어느덧 해가 바뀌어
 할아버님(또는 할머님)돌아가신 날을 다시
 맞게 되오니 영원토록 사모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가 맑은 술과 몇 가지 음식
 음식으로 공손히 제사를 드리오니 흠향하여
 주시옵소서.
 

   증조(曾祖)-효증손(孝曾孫)
   고조(高祖)-효현손(孝玄孫)
  제사축문(祭祀祝文)
  같은 서식(書式)인데 다만 제위(祭位)와 봉사자
  (奉祀者) 칭호만 촌수에 따라 달리 쓴다.

 

 



饗향



謹근
以이
淸청
酌작
庶서
羞수
恭공
伸신
奠전
獻헌
尙상


顯현
祖조
考고
또는
顯현
祖조

諱휘
日일
復부
臨임
追추
遠원
感감
時시
不불
勝승
永영
慕모


顯현
祖조

孺유
人인
密밀
陽양
朴박
氏씨
歲세
序서
遷천
易역


顯현
祖조
考고
某학
官생
府부
君군



 敢감
昭소
告고
于우

歲세
次차
太태
歲세
某모
月월
月월
建건
朔삭
初초
某모
日일
日일
辰진
孝효
孫손
哲철
壽수
 



維유






조부모


〔뜻풀이〕


 OO년 O월 O일 효손 OO은 삼가 고하옵이다.
 할아버님
 할머님 어느덧 해가 바뀌어
 할아버님(또는 할머님)돌아가신 날을 다시
 맞게 되오니 영원토록 사모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가 맑은 술과 몇 가지 음식
 음식으로 공손히 제사를 드리오니 흠향하여
 주시옵소서.
 

  증조(曾祖)-효증손(孝曾孫)
  고조(高祖)-효현손(孝玄孫)
  제사축문(祭祀祝文)
  같은 서식(書式)인데 다만 제위(祭位)와 봉사자
  (奉祀者) 칭호만 촌수에 따라 달리 쓴다.

 



饗향



謹근
以이
淸청
酌작
庶서
羞수
恭공
伸신
奠전
獻헌
尙상


顯현
考고
또는
顯현

諱휘
日일
復부
臨임
追추
遠원
感감
時시
昊호
天천
罔망
極극


顯현

孺유
人인
密밀
陽양
朴박
氏씨
歲세
序서
遷천
易역


顯현
考고
學학
生생
府부
君군



敢감
昭소
告고
于우

歲세
次차
甲갑
戌술
五오
月월
丁을
未미
朔삭
初초
七칠
日일
癸계
丑축
孝효
子자
哲철
壽수
 



維유






부모


〔뜻풀이〕


 OO년 O월 O일 효자 OO은 삼가 고하옵이다.
  아버님
  어머님 어느덧 해가 바뀌어
  아버님(또는 어머님)돌아가신 날을 다시
 맞게 되오니 하늘과 같이 크고 넓으신 은혜를 잊지 못 하여, 삼가 맑은 술과 몇 가지 음식
 음식으로 공손히 제사를 드리오니 흠향하여
 주시옵소서.
 

  호천망극(昊天罔極) :

  은혜가 하늘과 같이 크고 넓어서 헤아릴 수
  없습 니다.

 





饗향



謹근
以이
淸청
酌작
庶서
羞수
恭공
伸신
奠전
獻헌
尙상



歲세
序서
遷천
易역
諱휘
日일
復부
臨임
追추
遠원
感감
時시
不불
勝승
憾감
愴창


顯현

學학
生생
府부
君군



敢감
昭소
告고
于우

歲세
次차
甲갑
戌술
五오
月월
丁정
未미
朔삭
初초
七칠
日일
癸계
丑축
主주
婦부
沈심
順순
愛애



維유






남편의 경우


〔뜻풀이〕


 OO년 O월 O일 주부 심순애는 삼가  
 고하옵이다.
  어느덧 해가 바뀌어
  남편이 돌아가신 날을 다시 맞게 되오니
  슬프고 괴로운 마음 이기지를 못하여 삼가
  맑은 술과 몇 가지  음식으로 공손히 제사를
  드리오니  흠향하여  주시옵소서.
 

  
  불승감창(不勝感愴)
  
  슬프고 괴로운 마음 이기지 못함
 벽





饗향



慈자
以이
淸청
酌작
庶서
羞수
伸신
此차
奠전
儀의

尙상



歲세
序서
遷천
易역
亡망
日일
復복
至지
追추
遠원
感감
時시
不불
勝승
憾감
愴창


亡망
室실
儒유
人인
河하
東동
鄭정
氏씨



敢감
昭소
告고
于우

歲세
次차
甲갑
戌술
五오
月월
丁정
未미
朔삭
初초
七칠
日일
癸계
丑축
夫부
沈심
順순
燮섭
 



維유






아내의 경우


〔뜻풀이〕


 OO년 O월 O일  남편 심순섭은 삼가  
 고하옵이다.
  어느덧 해가 바뀌어
  아내가 돌아가신 날을 다시 맞게 되오니
   슬프고 괴로운 마음을  이기지를 못하여
  삼가  맑은 술과 몇 가지  음식으로 공손히
  제사를   드리오니  흠향하여  주시옵소서.
 

  
  망일복지(亡日復至)

  휘일부임(諱日復臨)과 같은 뜻이며 다만 격식을
  조금 낮춘 것임
 





饗향



謹근
以이

淸청
酌작
庶서
羞수

恭공
伸신
奠전
獻헌

尙상



歲세
序서
遷천
易역
諱휘
日일
復부
臨임
追추
遠원
感감
時시
情정
何하
悲비
痛통


顯현
兄형
學학
生생
府부
君군



敢감
昭소
告고
于우

歲세
次차
甲갑
戌술
五오
月월
丁정
未미
朔삭
初초
七칠
日일
癸계
丑축
弟제
沈심
順순
哲철
 



維유






형의 경우


〔뜻풀이〕


 OO년 O월 O일 동생 김철수는 삼가 고하옵이다.
  세월이 흘러 형님의 제삿날이 다시 돌아 오니 형제지간의 그리운 정과 비통한 마음 한량 없습니다.
여기 삼가 맑은 술과 몇 가지 음식을 차려 공손히 올리오니 응감하소서.

  
  정하비통(情何悲痛)을 불승비통(不勝悲痛)이라 쓰기도 한다.
  
  그리운 정과 비통한 마음 한랼 없습니다.
 






饗향




玆자
以이
淸청
酌작

陳진
此차
奠전
儀의

尙상




歲세
序서
遷천
易역

亡망
日일
復복
至지

情정
何하
可가
處처



亡망
弟제

洪홍
吉길
童동





告고
于우


歲세
次차
甲갑
戌술
五오
月월
丁정
未미
朔삭
初초
七칠
日일
癸계
丑축

兄형
O
O




維유






아우의 경우


〔뜻풀이〕


 OO년 O월 O일 형은 삼가 고하오.
  세월이 흘러 아우의 제삿날이 다시 돌아 오니 그리운 마음 어찌 할 바를 모르겠어서
여기 삼가 맑은 술과 몇 가지 음식을 차려 공손히 올리오니 응감하소서.

  
  정하가처(情何可處)
  
  그리운 마음 어찌 할 바를 모르겠소.
 






饗향




玆자
以이

淸청
酌작

陳진
此차
奠전
儀의

尙상




歲세
序서
遷천
易역

亡망
日일
復복
至지

心심
毁훼
悲비
念념



亡망
子자

洪홍
吉길
童동





告고
于우


歲세
次차
甲갑
戌술
五오
月월
丁정
未미
朔삭
初초
七칠
日일
癸계
丑축

 0
 0




維유






아들의 경우


〔뜻풀이〕


 OO년 O월 O일 .
  세월이 흘러 아들의 제삿날이 다시 돌아 오니
아비의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고 비통한 마음
   어찌 할 바를 모르겠어서
여기 삼가 맑은 술과 몇 가지 음식을 차려  올리오니 응감하여라.

  
  심훼비념(心毁悲念)
  
  아비의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고 비통한 마음
  그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