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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희공 인손 묘소가 세종대왕릉으로 된 연유
영배  2016-02-13 00:23:55, 조회 : 376, 추천 : 15

세종대왕릉은 왜 서울에서 여주로 옮겨왔을까
조선왕실의 피의 역사를 멈추게 한 세종대왕릉

2015년에는 부여와 공주의 백제유적들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선정되면서 다시금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대해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이보다 약 6년 먼저 인류의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이 여주에도 있다. 2009년 6월 30일 총 40기가 등록되었는데 그중에 조선의 제4대왕인 세종과 소헌왕후 심씨의 합장릉도 있다. 조선을 통틀어서 가장 잘 알려진 왕으로 세종을 말하는 사람들이 많을 만큼 그의 업적은 남다르다.

세종대왕릉이 있는 곳의 교차로는 세종대왕릉 교차로, 전면도로는 세종로, 근처에 있는 다리는 세종교라고 이름을 붙일 정도로 여주시는 세종대왕릉에 대한 관심과 자부심이 남다르다. 세종대왕릉과 효종대왕릉은 산책로로 연결이 되어 있는데 영릉 산책로 개방기간은 5월 16일 ~ 10월 31일까지이다.

세종대왕은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나 사용하는 언어인 한글을 창제하고 측우기, 해시계등의 과학기구를 개발한 업적을 가진 사람이다. 세종대왕릉은 사후에 서울 헌릉 서쪽에 모셨다가 예종 1년에 이곳 여주로 이장하였다.

세종대왕릉과 효종대왕릉을 산책로를 통해 한바퀴 돌아보는 시간은 약 1시간 30여 분이 소요된다. 세종대왕릉은 영릉(英陵)이라고도 부르는데 한글로 영릉이라고 부르는 릉은 17대 효종의 영릉(寧陵), 21대 영조의 맏아들이었던 효장세자의 릉으로 사후 왕으로 추존된 진종의 영릉(永陵)이 있다.

2월 초. 한겨울에 평일이어서 그런지 이곳을 찾는 참배객들은 많지 않았다. 60~70대로 보이는 어르신들 10여 명이 이곳을 방문하여 참배하고 나가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한겨울의 공기는 차가우면서도 시원한 민트향을 내뿜는 느낌이다. 특히 이곳 세종대왕릉은 주변의 산림이 잘 가꾸어져 있어서 나무가 뿜어대는 피톤치드가 정신을 맑게 만들어 주고 있다.

정면에 보이는 건물은 왕릉의 재실으로 세종대왕과 효종대왕의 왕릉 앞쪽에는 재실이 잘 보존되어 있는데 수백년 수령을 가진 회양목(천연기념물 제459호)등의 고목이 여러 그루 자리하고 있다. 현재 이곳에서는 100여 년 사이에 왕릉 보존의 변천사를 한 눈에 살필 수 있는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세종대왕릉이 이곳 여주에 자리하게 된 이면에는 조선 왕실에 몰아친 피의 역사때문이다. 세종은 부인도 많았고 자식 또한 많았던 임금이다. 특히 장자인 문종을 비롯하여 혈기왕성한 왕자들이 많았던 것은 왕가의 축복이라기보다 저주에 가까웠다. 장자인 문종은 병약했고 둘째인 수양대군은 야심이 컸다. 문종이 일찍 세상을 떠나자 어린 나이에 왕의 자리에 오른 단종은 매우 불안정한 왕권을 유지하고 있었다.

단종의 앞날은 쭉 뻗은 도로만큼 평탄하지 않았고 결국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긴 뒤 영월땅에 유배된 후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다. 이런 피바람은 단종에게서 끝나지 않고 세종의 6명의 왕자가 수양대군의 손에 목숨을 잃게 된다. 세조가 세상을 떠나고 왕위에 오른 예종은  왕을 모신 곳이 잘못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에 1469년에 세종의 묘를 파보게 된다. 그 자리에는 수의마저 썩지 않은 채 물이 가득차 있었던 것이다.

이장할 묘소를 찾아 한양에서 지근거리에 좋은 자리를 골랐는데 그것이 바로 이곳 여주였다. 하늘의 신선이 하강하는 천선강탄(天仙降誕)형의 자리가 이곳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자리에는 이미 임자가 있었다.

이인손의 묘가 이곳에 있었는데 그 덕분인지는 몰라도 이인손의 후손은 호의호식하고 조정의 요직이라는 요직은 모두 차지하고 있었다. 예종은 이인손의 아들인 이극배를 조정으로 불러 우회적으로 압력을 넣었고 울며겨자먹기로 선친의 묘역을 세종대왕을 이장하기 위한 묘역으로 내놓았다.

조금 걸어 올라오면 세종의 묘앞에는 정자각이 있다. 제례때 제물을 진설하고 제례를 드리던 집으로 하늘에서 보면 건물이 한자의 정자와 같다 하여 정자각으로 불리운다. 이곳은 동쪽과 서쪽으로 오르는 층계가 있다. 동쪽으로 진입하여 서쪽으로 내려오는 제례의식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조선왕조 최초의 합장릉인 세종대왕릉은 1977년 능역 성역화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위치가 좋아서 그런지 이곳의 건물들은 모두 양호한 데다 어느 하나 잘 관리되지 않는 것이 없었다. 숲이 한산한 데다 아늑한 느낌이 드는 곳이다. 최고의 명당이 어떤 곳이 알려면 가장 먼저 찾아봐야 하는 곳이 세종대왕릉이다.

가장 위대한 성군이었으며 어느 누구도 다른 평가를 내리지 않는 왕 세종대왕이 이곳에 잠들어 있다. 죽어서는 조선왕실에 몰아친 피의 역사를 멈추게 해주었다. 창조정신은 그 누구보다 앞서 있었으며 백성을 사랑하여 그 삶이 풍요롭게 하기 위한 애민정신은 세종 삶의 모토였다.

세종대왕릉 찾아가는 길 : 경기 여주시 능서면 영릉로 26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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